국민연금이 오는 22일 주주총회를 앞둔 현대자동차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간 대결에서 현대차 손을 들어줬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제안한 배당, 사내·사외이사 선임, 감사위원 선임 제안에 모두 찬성하기로 했다. 엘리엇의 사외이사 추천과 현금배당 요구에는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이날 결정으로 현대차그룹은 엘리엇과의 표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14일 회의를 열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정기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했다. 수탁자책임위는 현대차의 주당 3000원, 현대모비스의 주당 4000원 배당 결정에 찬성하기로 했다. 현대차에 보통주 주당 2만1967원, 현대모비스에는 주당 2만6399원 배당을 요구한 엘리엇의 주주제안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엘리엇이 두 회사에 요구한 배당 금액은 우선주를 포함해 8조원이 넘는다.

수탁자책임위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현대모비스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과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을 현대차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에도 찬성하기로 했다. 엘리엇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는 모두 ‘이해상충 문제가 있다’며 거부하기로 했다. 엘리엇은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사업 분야 경쟁사 대표 등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국민연금은 현대차 지분 8.7%, 현대모비스 지분 9.45%를 각각 보유한 2대주주다.
국민연금도 현대車 편에 섰다…엘리엇 高배당 요구에 '반대'
국민연금, 엘리엇 제안 모두 거부…"추천 사외이사 이해상충 소지"

현대자동차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간 주주총회 표대결이 현대차그룹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고배당을 요구한 엘리엇의 주주제안에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권고한 데 이어 국내 주식시장의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도 현대차 손을 들어주면서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엘리엇의 고배당 압박에서 벗어나 유보 현금을 연구개발(R&D)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쓸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큰 이견 없이 끝난 수탁자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14일 회의를 열고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효성 등 4개 회사에 대한 주총 안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했다.

엘리엇이 배당,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추천, 정관변경 등의 주주제안을 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총 안건이 핵심이었다. 결과는 현대차그룹의 완승이었다. 수탁자책임위는 모든 안건에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엘리엇이 요구한 배당 수준은 ‘과다하다’고 결론 내렸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보통주 주당 2만1967원을 배당하라고 제안했다. 이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면 현대차는 지난해 순이익(1조6450억원)의 3.5배에 달하는 5조8000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에도 보통주 주당 2만6399원(우선주 주당 2만6499원)을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른 배당 총액은 2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현대모비스 순이익(1조8882억원)의 1.3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투자에 쓸 재원을 모두 배당으로 지급하면 장기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수탁자책임위의 한 위원은 “엘리엇이 요구한 배당 수준이 너무 터무니없어 이견 없이 회사 측 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전했다.

수탁자책임위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하면서 설치한 의결권 행사 자문 기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의결권에 관해 수탁자책임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

표대결에서 우위 점한 현대차

수탁자책임위는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후보와 관련해서도 회사 측 제안에 찬성표를 던지기로 했다. 엘리엇이 추천한 후보들에 대해선 ‘이해상충 문제’를 들어 반대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예를 들어 엘리엇이 현대차 사외이사로 추천한 로버트 랜들 매큐언 후보가 회장으로 근무하는 밸러드파워시스템은 수소차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현대차는 “매큐언 회장이 현대차 사외이사가 되면 수소차 관련 핵심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수탁자책임위 관계자는 “회사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들이 경력이나 전문성 면에서 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결정으로 엘리엇의 주주제안이 오는 22일로 예정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총을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ISS, 글래스루이스, 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도 엘리엇의 주주제안에 반대할 것을 주주들에게 권고했기 때문이다. 기관투자가들은 대체로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따른다.

이미 드러난 지분율에서도 현대차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국민연금은 현대차 지분 8.70% 보유한 2대 주주다.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9.11%다. 3대 주주인 캐피탈그룹(지분율 6.98%)은 현대차에 우호적인 장기투자자로 알려졌다. 엘리엇의 현대차 지분율은 3.00%다.

현대모비스도 국민연금이 지분 9.45%를 보유해 기아차(16.88%)에 이은 2대 주주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35.62%에 달한다. 엘리엇은 이 회사 지분 2.60%를 보유하고 있다.

효성 주총 안건엔 반대

수탁자책임위는 이날 기아차 주총 안건에 대해서도 정의선 그룹 총괄수석부회장과 박한우 기아차 사장 등 현 사내이사를 재선임한다는 사측 안건에 찬성하기로 했다. 다만 남상구 가천대 석좌교수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재선임하는 안은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매입 당시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감시의무를 소홀히했다는 게 이유다.

효성에는 사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중 일부에 대해 반대했다. 효성은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박태호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하고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올렸다.

수탁자책임위는 “이들 후보가 효성의 분식회계 발생 당시 사외이사로서 감시의무를 소홀히했기 때문에 반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창재/장창민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