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CI '역외 원화시장 개설' 요구…정부는 '난색'

정부가 우리 증시를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선진시장 지수 편입을 위한 관찰 대상국 명단에 다시 올리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편입의 걸림돌로 지적되는 원화 환전성 제고 방안을 놓고 우리 정부와 MSCI의 견해차가 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 정부 "성의 보였는데…"

우리 정부는 그간 외국인 투자 편의를 제고하는 일련의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으면서 MSCI 선진 지수 진입을 위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부는 작년 8월 MSCI와 워킹그룹을 구성, 수차례 셔틀 회의와 화상 회의를 통해 한국 증시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문제를 논의해 왔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지난 1월 MSCI 측 요구를 수용, 외국인 투자등록 제도를 24년 만에 전면 개편해 옴니버스 어카운트(계좌)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글로벌 자산운용사나 증권사는 다수 투자자의 매매를 통합 처리하는 데 필요한 옴니버스 계좌를 내년부터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8월부터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 거래시간을 30분씩 연장하기로 한 것도 MSCI 선진 지수 편입을 위한 포석이었다.

MSCI가 원화의 환전성 부족을 주된 걸림돌로 지적하자 증시와 외환 시장 운영 시간을 다소 늘림으로써 문제 해결을 위한 나름의 '성의'를 보인 것이다.

지난 1월 MSCI의 수장인 헨리 페르난데즈 회장의 방한은 우리 증시가 다시 관찰국 명단에 복귀하는데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다.

페르난데즈 회장은 방한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예방해 "한국 정부의 개선 노력으로 글로벌 투자자의 투자 편의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런 한국의 변화를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적극 전달할 것"이라고 말해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우리 정부가 선진 지수 편입 노력에 박차를 가한 것은 중국 증시가 신흥시장 지수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돼 신흥시장 지수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중국 A주가 5%만 신흥시장 지수에 부분 편입돼도 경합 관계인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 규모가 8천억∼1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MSCI는 15일 발표한 연례 시장 분류에서 중국 A주의 신흥시장 지수 편입을 유보하고, 한국 증시에 대해선 선진 지수 관찰 대상국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한국 입장에선 현상 유지 쪽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 역외 원화시장 개설 문제가 최대 쟁점

이번 MSCI의 연례 국가 리뷰에서 우리 증시의 선진 시장행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는 원화 환전성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MSCI가 이번이 한국이 관찰대상국 리스트에 복귀하지 못한 주된 이유로 원화 환전성 부족에 따른 투자 제한을 적시한 것이다.

MSCI는 우리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의 이해를 반영해 언제든 원화를 달러로 바꿔갈 수 있는 역외 원화 시장 개설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개장 '30분 연장 카드'를 내놓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외환시장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는 우리 경제에 극단적인 불안정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MSCI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 경제의 특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24시간 환전이 가능한 역외 원화 시장을 열어주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정부는 MSCI 선진 지수 편입 이슈가 우리 자본시장의 발전과 증시 안정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MSCI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우리 외환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외 외환거래 허용은 단기적으로 추진하기는 곤란한 과제"라며 "단기적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 시장의 인프라를 선진화하고 우리 기업의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도 MSCI의 무리한 요구에는 일정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대두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MSCI가 과거에도 장기간 우리 증시를 관찰국 대상에 올려놓고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지렛대로 삼는 모습을 보였다"며 "MSCI의 관찰 리스트는 일종의 '희망 고문' 수단과도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해 연례 국가 리뷰에서 관찰 대상국 명단에 오르지 못함에 따라 우리 정부는 내년 6월을 다시 기약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내년에 관찰 대상국 리스트에 다시 오르면 이듬해인 2018년 6월 선진지수 편입 여부를 심사받게 된다.

2018년 심사에서 편입 결정이 나더라도 실제 편입은 2019년 이후 이뤄지게 된다.

중국 증시가 올해 신흥시장 지수 진입에 실패했지만 내년에는 부분 편입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증시와 중국 증시가 MSCI의 신흥시장 지수 안에서 일정 기간 동거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