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작가/사진=넷플릭스
김은희 작가/사진=넷플릭스
무시무시한 좀비로 세계를 사로잡은 '이야기꾼' 김은희 작가이지만 여전히 수줍고, 여전히 겸손한 모습이었다.

김은희 작가가 세계적인 흥행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에 대한 애정과 새 에피소드 '킹덤:아신전'에 대한 제작 뒷얘기를 전했다. '킹덤2'가 공개된 후 1년 만에 선보여진 '아신전'은 조선을 삼킨 좀비 역병의 시작점인 생사초의 비밀을 담았다. '킹덤' 시리즈를 관통하는 한(恨)의 정서를 고조시키면서, 어쩌다가 생사초의 존재가 조씨 일가에게 알려졌는지 과정을 92분 러닝타임으로 풀어냈다.

이전에 '킹덤' 시리즈에서 익숙했던 캐릭터라곤 민치록 역을 맡았던 박병은 정도만 등장한다. 그 외에 주인공 아신(전지현)을 비롯해 주요 인물들은 모두 새로 등장했다. 혼란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김은희 작가는 다시 한번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배경이 됐던 조선에서 나아가 북방의 이야기를 다루고, 가장 하층민으로 국경 지대에 사는 여진족을 설정했다는 점, 그들을 속이고 핍박하는 존재가 조선인이라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요즘처럼 역사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김은희 작가는 "작품에 아쉽다는 반응이 있다면 그 또한 작가의 책임"이라면서 "앞으로 어떻게 설명해드리고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희 작가/사진=넷플릭스
김은희 작가/사진=넷플릭스
▲ '아신전'을 어떻게 봤나.

'킹덤' 시리즈는 내놓을 때마다 '이게 가능한가' 싶고,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만들어지지 못할 얘기라고 생각했다. 시즌1, 2를 끝내고 '아신전'까지 왔다는 게 감사하다. '아신전'은 북방의 세계관까지 가는 중간 단계다. 이 단계까지 왔다면, 북방의 얘기도 가능하겠다 싶어서 설레기도 하고 감사했다.

▲ '킹덤' 기존 시리즈와 다른 속도감, 성격으로 호불호가 나뉘기도 했다.

어떤 논란이 있다면 그 책임은 작가에게 있다. '아신전'은 아신 이라는 북방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이 인물이 누군지, 왜 한을 갖게 됐는지, 극한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 액션보다는 감정의 깊이에 더 많이 고민했다. 저도 지금까지 나온 제가 쓴 작품 중에 가장 어둡고 날이 선 얘기로 받아들여지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기획 의도였기에 아쉽더라도 어쩔 수 없던 선택이지 싶다.

▲ '아신전'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매력은 무엇이었나.

남쪽의 느낌과 굉장히 다르다. 남쪽도 살기 힘들었지만 북쪽은 더 살기 힘들었을 거 같더라. 야인의 침략도 많고, 먹을 것도 부족하고, 이런 낯선 북방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시킬까를 고민했다. 김성훈 감독님이 북방의 매력, 자연이 주는 화면만 봐도 스산하고 삭막한 분위기를 잘 살려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아신전'을 쓸 때부터 전지현을 염두에 둔 걸로 알려졌다.

전지현 배우 하면 멋지고 화려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암살'이나 '베를린'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눈빛이 너무 좋았다. 그 눈빛이 참 슬펐다. 그런 배우가 아신 이라는 역을 해준다면 깊은 슬픔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신은 슬픔뿐 아니라 강인한 무사의 모습도 있다. 그런 액티브한 액션을 소화해줄 수 있는 배우이기에 처음부터 전지현 배우를 염두에 뒀다.

▲ 캐스팅 걱정은 없었나.

캐스팅 할땐 90%가 걱정이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한다. 어떻게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릴 생각을 했다. 전지현이 아닌 그 어떤 배우도 생각나지 않더라. 무릎 꿇고 빌었고, 다행히 허락해주셔서 감사했다.

▲ 결과물로 접한 전지현은 어떻던가.

대사 없이 시청자들에게 뭔가를 전달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모든 액션이 좋았지만 벌판을 달리는 장면은 깜짝 놀랐다. 달리는 것 자체가 한 자루의 칼 같더라. 너무나 완벽하게 소화해주셨다. 생각한 그대로였고, 그래서 감사했다.

▲ 아신이라는 인물은 언제 구상했을까.

시즌1 때는 아니었다. 시즌2 초중반이었다. 생사초가 차가운 성질을 가진 풀이고, 북방에서 온 풀이 아닐까 생각했을 때, 북방에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한이 맺힌 캐릭터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구상했다.

▲ 아신은 여진족이라 조선 글을 읽는 것에 대해 개연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더라.

그들은 오랫동안 조선에서 살아왔고, 타는 한 부족을 이끄는 인물로서 자신들의 문자와 조선의 문자를 모두 알지 않았을까. 여러 언어에 익숙한 인물이라는 설정이었다.

▲ 아신의 대사가 많지 않다. 이것도 의도된 설정일까.

아무도 아신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다른 인물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게 아버지를 보내기 전에 '돌아가자'고 하는 거다. 사실 돌아갈 곳도 없는 아이인데, 그 말로 외로움을 표현한 거다.

▲ '킹덤'을 관통하는 주제는 뭘까.

'아신전'은 한에 대한 얘기인데 '킹덤'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거다. 피지배계층의 배고픔,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 '킹덤' 세계관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아신전'은 '킹덤' 프리퀄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그러면 그 전엔 생사초는 또 누가 알고 있었을까. 그런 작가만의, 저만의 상상력은 있다. '아신전'이 현재까지 나온 얘기로는 가장 최초의 생사초의 얘기가 될 거 같다. 시즌3는 확정된 건 없지만,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시즌3 결말 정도는 나와 있는 상태다.

▲ 아신은 계급도 최하층이고, 여성이다. 의미 있는 설정이었나.

(이전까지 시리즈에서) 서비(배두나)도 있고 영신(김성규)도 있지만, 세자인 창(주지훈)이나 이런 기득권층의 결정이 극을 이끌어왔다. 그들의 결정으로 역병을 막고, 백성을 구했다는 거다. 하지만 커져가는 '킹덤'의 세계관에서는 피지배계급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드러났으면했다. 북방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다가 가장 끝에 한이 맺힐 수밖에 없는 그 부족의 이야기를 보고, 그 부족의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면 어떨까, 그들의 한을 다룬다면 더 깊이 있고 다양하게 얘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 '킹덤' 시즌3 전에 '세자전' 제작 소식도 들려왔다.

작가 입장에서는 세자도, 조학주(류승룡)도, 영신도, 서비도 전사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다. 세자라면 당연히 세자빈이 있을 테고, 중전(김혜준)도 늙은 왕과 결혼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싶고, 서비도 출생이 어딜까, 이런 전사들이 많았다. 세자전도 정리된 전사가 있지만 제작 여건이 갖춰져야 가능하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다.

▲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아신전'이 '조선을 나쁘게 그리고, 여진족을 옹호했다'는 말도 나온다.

아신은 그 무엇도 아닌, 변경인의 느낌이다. 그 사람의 깊은 한을 표현하고 싶었다. 조선 북방의 거칠었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조선인이라 선하다, 혹은 악하다로 나뉜 건 아니다. 앞으로 더 이야기가 펼쳐나간다면 오해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 실제로 캐릭터가 선악이 공존했다.

모든 사람이 착하기만 하지도 않고, 악하기만 하지 않다. 행동엔 원인이 있고, 그걸 결정할 수밖에 없는 제공자가 있는 거고. 안현(허준호)도 곧고 바르지만 그 사람도 조선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 민치록도 같은 느낌이다. 충직한 충신이기에 조선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거다. '킹덤'이라는 세계관 자체가 역병이라는 극한 상황이다 보니 그 캐릭터들이 그렇게 움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인터넷을 잘 안 한다. 겁이 많아서 많이 못 찾아 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해주시는 얘기가 제가 아는 전부다. '정말?' '진짜?', '몰카를 찍히고 있나?' 싶고.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얘기가 서양의 좀비를 만났는데, 그 부분에서 생기는 새로움에 호기심을 가져 주시고, 좋아해주시는게 아닐까 싶다.

▲ 시즌3에서는 어떤 구도를 그리게 될까.

인간의 힘으로 막기 힘든 역병의 얘기가 될 거다. 역병이 번질 때, 남쪽에서는 성곽이나 지형 지물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지형지물도 없는 산, 평야에서 역병이 퍼지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창은 지휘를 내려놓았기에 이용할 수 있는 권력이 없는 상태다. 아신과 비슷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

▲ 김성훈 감독이 '아신전'은 가장 완벽한 '킹덤' 시리즈라고 평했다.

이전의 것들이 (수준이) 떨어졌나?(웃음) 기사는 봤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저도 여쭤보지 못했다. 김성훈 감독님은 대본을 쓰고 포기하는 부분을 단번에 알아챈다. 포기하지 말라고 계속 자극도 주신다. 그런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너무 감사하다.

▲ 남편인 장항준 감독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지난 10년간 실패한 작품이 없다. 항상 성공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감이나 부담감이 있을까.

저희 남편이 자꾸 망언을 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10년간 실패한 게 없었다고 하는데, 작가 입장에서는 '이런 걸 더 열심히 했었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을 당연히 한다. 그걸 눈감아주고, 좋게 봐주셔서 그렇지 성공했다고 생각 안 한다. 다만 제 경험과 노력, '소홀히 했더니 구멍이 보이네' 이런 것들에 대해 어떻게든 메꾸려 하고, 해이해지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김성훈 감독님께 감사하다. 너무 힘들땐 그냥 넘어가려고 할 때 '더 해야 한다'고 하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려 한다. 영상물이라는 게 작가 혼자서 하는게 아니다. 좋은 배우, 좋은 감독, 좋은 스태프랑 같이할 때 더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오더라.

▲ 작가님에 대한 관심이 연예인 못지않다.

남편과 안 다니면 못 알아본다.(웃음) 일상의 부담감은 전혀 없다. 다만 남편이 너무 방송에 나와서 제 얘길 하니, 그 입을 막아버리고 싶다. 물론 순기능은 있다. 더 열심히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장항준 감독의) 방송 출연을 이제 제가 막아보려 한다. 갑갑하다.

▲ 장항준 감독님은 '아신전'을 어떻게 봤다고 하던가.

이렇게 말하면 장항준 감독 '디스'가 되는데, 그분은 역사를 잘 모른다. '이게 무슨 얘기야?'라고 하더라.(웃음) 편집본을 봤는데, 거기에는 자막이 없어서 더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다. 장항준 감독도 생각보다 액션이 세지 않다는 말은 하더라.

▲ '킹덤' 뿐 아니라 '시그널' 등의 작품도 후속작 얘기도 나왔다.

'시그널'은 큰 성공을 준 작품이고, 하지 못한 얘기가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런데 작가 혼자만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 열심히 발로 뛰어서 여건을 만들어보고 싶다. 의욕은 많다.

▲ '킹덤'으로 인연 맺은 전지현, 주지훈과 차기작인 '지리산'으로도 인연을 맺었다.

'아신전' 때문에 전지현 씨가 출연을 결정한 건 아닐 거다. 시점이 다르다. 또 두 작품의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다. 주지훈도 전지현에게 당하는 신입사원 느낌이다. '아신전'과는 전혀 상관없이 '지리산'의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고 제안하게 됐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