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한 '갑질과의 전쟁'…'사이다 변호사' 우리 동네엔 없나요?
‘감자탕’과 ‘젠트리피케이션’. KBS 2TV의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연출 이정섭, 극본 이향희)를 보면 이 두 단어가 맴돈다. 최근 3회에 걸친 에피소드가 극중 30년 전통 할매 감자탕집의 명도소송(부동산 소유자나 권리자가 현재 점유자를 상대로 그 인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조들호(박신양 분)는 오랜 단골인 할매 감자탕집이 재개발을 이유로 건물주와 용역에 의해 퇴거를 강요당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데도 도가 지나치게 강제적이어서다. 알고 보니 대기업 정 회장(정원중 분) 아들 마이클 정(이재우 분)이 일대 상가를 전부 매수해 리모델링한 뒤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한 목적이다.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외부인이 유입되면서 활성화되고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이다.

정 회장 일가는 서민을 보호한 검사 조들호의 법복을 벗긴 악연 중의 악연. 감자탕집을 구하기 위해 조들호는 지역 상인의 연대를 호소했으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느라 남의 일에 무관심한 ‘을’을 규합하기란 쉽지 않다. 과연 조들호는 어머니 같은 감자탕집 할머니가 병까지 얻은 상황에서 임차인이 거의 패소한다는 명도소송을 이길 수 있을까? 그것도 대기업을 상대로?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정 회장 일가가 대국민 사과를 하며 소송을 취하한다. 국내 대표적 젠트리피케이션 사례인 한남동 예술인들의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도 건물주 싸이와 1년여 진통 끝에 최근 합의한 사례가 있어 판타지라고 할 수만은 없다.

이런 현실성 덕분에 ‘~조들호’를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한 번 보면 계속 보게 되니까. 일개 동네 변호사가 ‘슈퍼 갑’인 대기업 회장 일가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분명 판타지다. 그러나 에피소드는 현실과 깊이 맞닿아 있다. 불의에 멈칫거리지 않고 온몸을 불사르며 대응하는 조들호는 “악연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신조로 마이클 정이 자신을 살해하려는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들판의 호랑이’라는 이름처럼 “너는 죄 짓고도 도망가는 데 대한민국 1등이잖아”라고 일갈하며 비웃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쥐면서도 체증을 가라앉힌다.

신참 변호사 은조(강소라 분)와 사무장 애라(황석정 분), 사채업자 대수(박원상 분)는 이런 조들호의 조력자로 만화적 캐릭터에 날개를 더했다. 원작인 동명 웹툰의 김양수 작가는 실제 의정부 시장 안에 동네 변호사 카페를 운영하는 이미연 변호사가 조들호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웹툰 ‘조들호’의 에피소드에는 이 변호사가 겪은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로 옮겨지면서 최근 이슈가 첨가되기는 했지만 약자에 대한 법의 시선은 그대로다.

드라마에는 부자, 대형 로펌 대표(강신일 분), 검사장(김갑수 분) 등과 함께 반대편에 있는 치매 노인, 노숙자, 청년 실업자, 청소년, 영세 상인 등 사회적 약자가 대거 출연한다. 같은 공간에 있는 양극단 계층은 우리 사회의 ‘갑’과 ‘을’의 관계를 명료하게 부각시킨다. 우리의 편견과 무관심이 ‘갑질’에 더 큰 힘을 실어준다는 단순한 진리도 보여준다.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악이 흥한다는 사실을 변호사 조들호의 활약상을 통해 거듭 제시한다. 관심과 참여만 한 명약은 없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