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 팔던 전기차 판매 '뚝'…보조금이 남아돈다
올 들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남아도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하반기에 접어들었는데도 국내 주요 지역 전기차 보조금은 절반도 채 소진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 년도 안 돼 보조금이 동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 지원했던 예년에 비하면 딴판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자동차 대리점 판매직원은 “작년엔 출고 대기 기간이 워낙 길어 보조금을 신청하고도 못 받는 경우가 있었지만 올해는 대기가 거의 없는데도 전기차를 사려는 수요가 확 줄었다”고 했다.

○전기차 보조금 절반도 안 나가

없어서 못 팔던 전기차 판매 '뚝'…보조금이 남아돈다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전국 161개 지자체의 일반 대상 전기차 구매 보조금 소진율(대수 기준)은 19일 기준 44.6%로 집계됐다. 이들 지자체가 민간 일반 물량으로 공고한 6만6953대 가운데 현재까지 2만9874대만 보조금을 신청했다.

지원 대수(3만172대)가 많은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8개 광역·특별시와 제주도는 보조금 소진율이 32.2%에 그쳤다. 보조금 조기 소진으로 전기차 구매 자체를 포기한 소비자가 적지 않았던 지난해와 대조적이다. 택시·법인·공공기관 등 일반 물량 외 보조금도 절반밖에 소진되지 않았다.

전기차 판매 속도가 예년 같지 않은 건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올 상반기 유럽 시장에서 현대자동차·기아의 전기차 판매량은 7만1240대로 1년 새 8.6% 줄었다. 글로벌 완성차 판매 2위 업체인 폭스바겐은 수요 위축에 따라 이달부터 전기차 생산 규모를 한시적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폭스바겐의 독일 엠덴 공장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가 당초 계획한 생산량보다 30% 가까이 줄었다”며 “인플레이션, 보조금 감소 등으로 전기차 전반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초 연간 글로벌 친환경차(전기차·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을 1430만 대로 추정했던 시장조사업체 EV볼륨즈는 최근 이 수치를 1390만 대로 낮춰 잡았다.

전기차가 없어서 못 판다던 미국에선 이제 재고 처리가 문제가 됐다. 미국 자동차 시장분석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6월 말 테슬라를 제외한 미국 내 전기차 재고는 103일분에 달한다. 1년 새 네 배나 늘었다. 콕스오토모티브는 “전기차 판매가 전년 대비 75%씩 성장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며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여전히 높지만 비싼 가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성 문제 해결이 관건”

전기차 수요가 주춤하면서 전기차 드라이브를 걸어온 완성차 업체는 물론 배터리 업체도 고민에 빠졌다. 최근 배터리 제조사들은 전기차 생산 목표치를 내려 잡는 완성차 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재고 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한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로 갈수록 수요 위축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라며 “배터리 업체들도 연쇄적으로 생산량과 재고를 조정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 돌파구 찾기에 나섰다. 수요 위축의 가장 큰 원인인 비싼 가격을 낮추는 방식을 통해서다. 선봉장엔 테슬라가 서 있다. 연초부터 잇달아 가격 인하를 단행한 테슬라는 최근 한국에 가격을 5699만원으로 책정한 모델 Y를 출시하며 정체됐던 전기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업계에선 나흘 만에 사전 계약 물량이 1만3000대를 넘어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 올인’ 대신 하이브리드카 판매를 늘리려는 전략도 눈에 띈다.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뿐 아니라 충전 인프라 부족을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실제 올 상반기 국내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은 전년보다 36.4% 늘어 전기차 판매 증가율(16.2%)을 크게 웃돌았다. 현대차는 2030년 글로벌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을 전체의 16%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빈난새/김일규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