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 그냥 못 지나친다…쿠팡 공세 속 살아남은 복병 정체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휴대폰은 고사하고 ‘삐삐’도 없던 시절, 청춘 남녀들은 역전 시계탑에서 모이곤 했다. 서울에서 199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강남역 뉴욕제과 앞을 만남의 장소로 택했다. 미팅이나 소개팅할 때 주로 그랬다.

요즘 10·20세대들은 어디서 만날지 특정하기 어려울 경우 다이소나 올리브영을 약속 장소로 정한다고 한다.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역에 둘 중 하나는 꼭 있기 때문이다. 5000원 미만의 각종 잡화를 파는 다이소, 뷰티 전문 유통 매장인 올리브영은 네이버, 쿠팡 같은 이커머스 ‘자이언트’들의 엄청난 물량 공세에도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올리브영과 다이소가 쿠팡 공세에도 살아남은 비결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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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와 올리브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을 도보 거리에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장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필품을 공급하면서 그 종류를 거의 무한대로 늘렸다는 점이다. 바로 소싱(조달) 능력이 두 기업의 최대 강점이라는 얘기다.

올리브영은 2030 젊은 여성 직원들의 ‘소싱 파워’가 최대 무기다. 이들은 개인적인 해외여행을 갈 때도 유럽 어느 작은 매장에 있는 예쁘고 가격 합리적인 뷰티 제품들을 보면, 하루라도 빨리 올리브영 매장에 깔도록 즉각 조처를 한다. 일종의 ‘패스트 뷰티’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소의 경쟁력도 소싱 능력이다. 절대 5000원을 넘지 않는 각종 일용 잡화들로 2, 3층짜리 건물을 가득 채운다. 다이소가 가맹점 사업을 확대하는 등 도보 거리 곳곳에 자리 잡으면서 동네 문방구가 사라질 정도로 확장세가 무섭다. 박정부 아성다이소 회장의 현재 최대 고민은 소싱이다. 그는 중국 편향의 소싱 루트(조달 경로)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여러 나라로 확대하도록 임직원들에게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롯데마트의 부활을 설계 중인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도 소싱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마트와 슈퍼를 통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조직의 SKU(보관·출고의 최소 단위)를 하나로 합침으로써 바잉 파워를 회복하려는 목표다. 까르푸 출신으로 유통업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강 대표는 글로벌 식자재 분야에서도 소싱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다. 온라인 유통 매장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각종 세계 요리의 재료들을 롯데마트 매대에 진열하고 있다.

소싱은 유통업의 본질이다. 유통업체들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혹은 필요로 할 것 같은 물건을 어떻게든 확보해 이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물건만 많다면 이를 어디에서 파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상품 경쟁력은 온오프라인 매장이란 구분을 뛰어넘을 수 있다.

'소싱 능력'이 유통업의 본질

이런 점에서 네이버는 ‘사이비’에 가깝다. ‘정통 유통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네이버는 물건을 매입하지 않는다. 그들의 소싱은 간접 형태다. 수많은 셀러를 ‘가격 비교’라는 포털 사이트의 무기로 유혹해 불러들였다.

물론, 현재 네이버는 ‘롱테일’의 기다란 곡선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수백만 명의 셀러들에게 다양한 판매 도구들을 제공한다. 라이브 방송을 만들도록 도와주고, 빠르게 배송할 수 있도록 물류업체를 알선해주는 식이다.

쿠팡이 빠른 배송으로 유통업의 판도를 바꾸려고 한 건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쿠팡엔 이마트의 쟁쟁한 소싱 능력이 없었다. 1993년 창동점 오픈 이래 올해로 30년간 유통업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마트 ‘바이어 군단’을 이기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게 ‘로켓 배송’이다.

현재 결과는 어떤가. 이마트, 쿠팡, 네이버 3개 사에서 SKU별 판매 순위를 매긴다면, 누가 1등을 차지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통계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매출 단위가 크지 않은 자잘한 품목들은 네이버 쇼핑이 1등일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는 여전히 롱테일의 제왕이다. 기저귀, 세제, 생수 등 대용량 생활용품은 무조건 쿠팡이 1등일 것이다. 반복적으로 구매하며 딱히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데 무게가 나가는 상품은 로켓 배송으로 주문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다면 이마트는?

꿰야 할 구슬 많은 이마트, "지금이 주가 바닥일 수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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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는 여전히 CJ제일제당, 농심, 오뚜기, 대상 등 주요 식품 제조사의 주요 제품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유통 채널이다. 이마트는 주요 대형 제조사들과 철옹성 같은 동맹을 맺고 있다. 삼겹살, 닭고기, 과일 등 신선식품(그로서리) 역시 이마트가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다. 하지만 그로서리 부문에서도 쿠팡 프레시, 컬리, 오아시스 등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농산물 유통업계 관계자는 “올해 토마토는 쿠팡이 가장 많이 팔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까지 한국의 유통산업은 쿠팡과 네이버라는 이커머스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 기존 유통업체들이 끌려들어간 형국이었다.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는 라스트 마일의 속도를 높이는데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차라리 그 돈을 소싱 능력을 키우는데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쿠팡과 네이버가 좇아오지 못하도록 세상의 모든 물건을 판매하는 유통의 본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신세계그룹만 해도 대형마트, 편의점, SSM(대형 슈퍼마켓), SSG닷컴, G마켓 등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의 SKU를 통합하는 일이 빠른 배송보다 훨씬 중요한 과업이 아닐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점에서 이마트의 주가는 오히려 지금이 바닥일 수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