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통화 긴축, 역사적으로 불황 초래…경기침체는 필연적"
“지독한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돈을 마구 찍어낸 결과입니다. 올해 미국의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수순입니다.”

스티브 한케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올해 말 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5~6%까지 내려오겠지만 경제주체의 고통은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21년부터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틀렸다”며 금리 인상 정책의 실패 가능성을 여러 차례 경고했다. 당시 예상한 물가 상승률(6~9%)은 지난해 현실이 됐다.

▷지난해 고물가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통화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2020년 2월부터 작년 3월까지 미국의 통화량(M2)은 41% 늘어났습니다. Fed의 인플레이션 목표치(2%)보다 몇 배 빠르게 통화량이 증가한 것이죠. 코로나19 확산 이후 통화량을 이례적으로 늘린 게 주원인입니다.”

▷이례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2021년 7월 존 그린우드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너무 많은 통화량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는 기고를 했습니다. 프리드먼의 통화방정식인 ‘MV=PY’를 적용해 봤습니다. M(통화량)과 V(통화유통 속도)는 P(물가)와 Y(실질 산출량)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이 결과 작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6~9%에 달할 것이란 답이 나왔습니다. 실제 지난해 인플레이션은 6월 9.1%로 정점을 찍었고, 11월 7.1%까지 내려왔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올해 글로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인플레이션은 부유층보다 저소득층에 더 큰 타격을 줍니다. 소득이 많지 않은데 물가가 오른다면 번 돈을 대부분 소비하게 되지요. 인플레이션이 소득 재분배를 막고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임금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올해 물가는 어느 정도 잡힐까요.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6~8%에 달했고, 이런 추세 자체는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바로 꺾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연말께에는 물가상승률이 5%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Fed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금리 인상과 통화량 사이에는 매우 약한 연결고리가 있을 뿐입니다. 과거 통화량을 유지하고 기준금리만 대폭 높였던 사례가 있었죠. 금리를 크게 올렸지만 경제활동은 활발했고, 고용 시장도 강세였습니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만 올리는 것은 소용없고, 시장에 풀린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행하게도 Fed의 통화정책은 잘못된 방향이었습니다. 파월은 통화량과 물가 상승의 관계를 부정했습니다. 통화량을 제때 줄이지 못하고 방향을 급격히 선회한 것이 실패를 불러왔습니다.”

▷가파른 통화량 축소가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습니까.

“올해 경기침체는 필연적입니다. 급격한 통화 공급 위축은 역사적으로 늘 불황을 불러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29~1937년 화폐 공급을 지속적으로 줄였는데, 이것이 1937~1938년의 대공황과 경기침체를 불러일으켰죠.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글로벌 경기 전망이 전반적으로 암울합니다.

“고물가 외에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 제재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경제 제재 중 상당수는 시장을 왜곡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는 대신 푸틴 지도부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습니다.”

▷증시는 어떻게 보십니까.

“기업들의 작년 4분기 실적 시즌이 곧 시작됩니다. 주요 기업이 월가 예상보다 낮은 수익을 발표하면서 투자 심리를 끌어내릴 것입니다. 괜찮다고 보는 것은 (전기차 등 배터리에 쓰이는 원자재인) 리튬입니다. 리튬은 수요 특성상 여전히 강세를 띨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암호화폐에 대해 여러 번 경고했습니다.

“암호화폐 광풍은 마치 종교와도 같았습니다. 거래소 FTX의 파산보호 신청 사태 이후 암호화폐 열풍이 역사상 가장 큰 사기 중 하나였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FTX에는 회계 부서도, 정상적인 기업 이사회도 없었죠. 암호화폐는 투자는 물론이고 장려해야 할 혁신도 아닙니다. 룰렛(복불복 내기)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시장일 뿐입니다.”

스티브 한케 교수는…美·亞 각국 통화정책 자문한 '머니 닥터'

스티브 한케는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과 교수다. 콜로라도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정부의 경제자문위원을 지냈다. 아시아 금융위기 상황에서 인도네시아를 장기 집권한 수하르토 대통령의 최고 경제 고문을 맡기도 했다. 통화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자문을 하며 ‘머니 닥터’로 불렸다.

그는 존스홉킨스대 사상 가장 빠르게 정교수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1995년 존스홉킨스대에서 글로벌 보건 및 기업 연구소를 설립했다. 미국에서 금융 안정센터의 특별 고문 및 경제측정협회 이사회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와 중국 인민대 국제통화연구소 공동선임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한케 교수는 물가 상승이 경제에 주는 영향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그는 팬데믹 이후 금리 인상 정책에만 집중하는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행보를 여러 차례 공개 비판했다. 지난해 초 월스트리트저널에 “제롬 파월은 틀렸다. 돈을 찍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내용의 기고를 싣기도 했다.

뉴욕=정소람 특파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