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우리은행 직원과 동생. / 사진=연합뉴스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우리은행 직원과 동생. / 사진=연합뉴스
최근 금융권에서 거액의 횡령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고객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고객 돈, 회삿돈을 뒤로 빼돌리는 일부 임직원의 횡령은 국내 대형 시중은행,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업권을 불문하고 횡행하고 있다. 이렇게 지난 5년여간 빠져나간 금융권 임직원의 횡령액은 1000억원 규모다. 해가 갈수록 횡령액이 늘어나고 수법이 교묘해지는 데 따라 금융당국의 감독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찰에 따르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7일 KB저축은행 직원인 40대 남성 A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했다. 앞서 KB저축은행은 지난해 12월 자체 감사 과정에서 A씨의 횡령 혐의를 발견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A씨는 기업금융 업무를 담당해온 직원으로 파악됐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기업 대출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 문서를 위조해 94억원을 빼돌린 것이 A씨의 혐의다. 경찰 수사로 확인된 횡령액 규모는 100억원 수준이다. 앞서 은행이 자체 감사로 적발한 횡령액은 78억원이었다. A씨는 빼돌린 돈 90% 이상을 도박으로 탕진한 상태다. 그는 경찰 수사에서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마치는 대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최근 대규모 횡령 사건이 이어지면서 금융사 내부통제 시스템 부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우리은행 직원이 10년 동안 회삿돈 약 614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모아저축은행 직원이 약 59억원의 기업 대출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달에는 새마을금고 직원이 16년간 고객 돈 약 4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금융권 일대에 파문이 일었다.
KB저축은행 가락동 본점. 사진=한경DB
KB저축은행 가락동 본점. 사진=한경DB
이렇게 지난 5년여간 금융권 임직원이 뒤로 빼돌린 횡령액은 1000여억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5월까지 집계된 전 금융권 임직원 횡령액은 총 1091억8260만원이다. 집계 이후 경찰 수사 과정에서 감춰진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서 횡령액이 증가하는 사례가 있는 만큼, 실제 전 금융권 임직원 횡령액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에서 횡령 사고를 저지른 임직원은 총 174명으로 추산됐다.

연도별 횡령액은 2017년 89억8870만원, 2018년 55억7290만원, 2019년 84억7370만원, 2020년 20억8280만원, 2021년 152억6580만원, 2022년은 5월 중순까지 687억9760만원으로 나타났다. 횡령액 규모가 가장 큰 업권은 시중은행(808억3410만원)이었다. 그 뒤로 저축은행(146억8040만원), 증권(86억9600만원), 보험(47억1600만원), 카드(2억5600만원) 순이었다.

시중은행에서는 우리은행이 633억7700만원으로 최다치를 기록했다. 보험은 KB손해보험(12억300만원), 카드는 우리카드(2억5100만원), 저축은행은 KB저축은행(77억8320만원·경찰 조사 결과 100억원 추정), 증권은 NH투자증권(40억1200만원)이 가장 많았다.

최근 금융권 임직원 횡령액이 늘어나고 범행 수법이 교묘해지는 데 따라 금융당국의 감독 강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은 현재 내부통제 강화 방안 논의에 착수한 상태다. 특히 최근 2건의 대형 횡령 사건이 발생한 저축은행 업계에 대해선 준법 감시·감사 담당자 등과 함께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구체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 횡령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전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며 "현재 저축은행업계 관련으로는 금융사고 위험에 노출된 업무를 우선 확인하고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해 권한을 분리하거나 내부통제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면밀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