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세 전광판에 암호화폐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허문찬 기자
한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세 전광판에 암호화폐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암호화폐 거래소가 다른 기관의 감시 없이 사실상 증권사·은행·한국거래소 등의 역할을 한꺼번에 겸하고 있어 이용자보다 자사의 이익을 우선할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거래소 임직원이 코인 시세를 조종하고 내부 정보를 이용하는 등 불공정 거래 우려도 높아,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경고다.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8일 ‘가상자산거래업, 이해상충 규제의 필요성’ 보고서에서 “현재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업체는 매매중개, 체결, 청산·결제, 예탁, 상장 등의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며 “증권 거래와 비교하면 증권사,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은행 등의 역할을 한 곳에서 수행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여러 기관이 참여해 서로 감시·견제를 하는 증권 거래와 달리, 암호화폐 거래는 민간 거래소가 이 모든 역할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호 감시가 없는 구조는 거래소와 이용자간 이해상충 위험에 취약하다. 이해상충이란 하나의 기관이 고객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할 때 기관 자체의 이익과 고객 대리인으로서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을 말한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 이용자의 이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원은 거래소가 거래 정보를 조작해 고객 자산을 임의로 인출하거나, 관련사의 코인을 검증 없이 상장하고 내부정보·자기자본으로 거래에 참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거래 활성화를 위해 고객 손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거래대상 자산 요건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매매 고객 확대를 추구한다.

현재 거래소는 고객들로부터 자금과 암호화폐를 미리 예탁받은 상태에서 매매를 중개한다. 매수고객은 돈을 거래소의 은행 계좌에, 매도고객은 암호화폐를 거래소의 블록체인 전자지갑에 예탁해둔다. 이런 거래소 안에서의 거래는 실시간으로 블록체인상에 반영되는 게 아니라 해당 업체의 전산시스템 안에서만 이뤄진다.

즉 개인이 코인을 사고팔아도 거래소의 전자지갑과 법인 은행계좌 잔액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 거래 정보 조작, 시스템 해킹 등으로 인한 이용자 피해 우려가 특히 큰 이유다. 이 연구원은 “현재 거래업체들은 증권시장과 유사한 경쟁매매 방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장 형성’ 기능이 아닌 소매중개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도입했다. 미국과 영국은 암호화폐 거래업체에 대해 등록제를, 싱가포르와 홍콩은 허가제를 시행 중이다. 신고제인 국내보다 더 엄격한 제도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거래소의 자기자본거래 금지, 임직원 거래에 대한 감독 등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명확한 규정도 도입했다.

이 연구원은 국내에도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인가·등록제는 물론 고유자산과 고객자산의 분리, 약관 및 상장 규정에 대한 공시·설명 의무 등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허수 주문, 시세 조종 주문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 법규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