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입사지원 클릭 2번이면 300만원"…퍼주기 된 구직수당
봉사활동 해도, 상담만 해도
모두 구직활동으로 인정
석 달여 만에 25만명 신청
"업무효율 위한 기준"이라지만
취업 의사 없어도 받을 수 있어
12일 고용노동부가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국민취업지원제도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전국 고용센터와 민간 위탁기관에 ‘취업활동계획 수립 및 구직활동 인정 세부기준’을 내려보냈다. 공문에는 “취업활동계획 및 구직활동 인정기준 적용의 혼선으로 민원이 다수 발생해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한 기준을 마련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실업부조인가 청년수당인가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저소득 실업자, 청년, 경력단절 여성 등 취업 취약계층(15~69세)에 구직수당과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기존의 정부 취업 지원 프로그램인 취업성공패키지와 청년구직활동지원금(청년수당) 제도를 통합한 것으로, 이른바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로 불린다. 월 50만원씩 6개월간 구직수당 최대 300만원을 받으려면 가구소득이 중위소득의 50%(4인 가구 약 244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재산 3억원 이하)이어야 한다. 최근 2년 내 100일 또는 800시간 이상 취업 경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청년(18~34세)의 경우 중위소득 120%(4인 가구 약 585만원) 이하까지 신청할 수 있다.‘1인당 현금 300만원’의 홍보 효과는 컸다. 시행 한 달여 만에 20만 명이 몰려들었고, 지난 8일 기준 신청자는 25만3020명에 이르렀다. 수급 자격을 인정받은 인원은 15만5449명, 이 중 9만807명(58.4%)이 청년이었다.
반면 전국 고용센터와 민간 위탁기관에 근무하는 상담사는 총 4000여 명에 불과하다. 상담사 1인당 많게는 60명 넘는 참여자의 서류를 들여다보고 6개월간 구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다보니 심사가 지연되면서 수당이 지급되기까지 길게는 두 달 이상이 걸리는 등 체증 현상마저 빚어졌다. 고용부가 전국 고용센터 등에 지나친 과제 부여를 줄이고 구직활동을 폭넓게 인정하라는 내용의 새 지침을 내린 이유다.
“구직활동 너무 독려하지 말라”
정부는 행정 일관성 제고 차원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기준을 지나치게 완화해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새 지침은 취업활동계획 수립과 관련해 “불필요한 과제 부여가 많다는 신청자들의 불만이 많다”며 상담사들에게 수급자가 납득할 수 있고, ‘사회통념상 인정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과제를 부여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6개월간 직업훈련을 받는 참여자에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인정 가능한 범위가 아니라고 했다.매달 50만원의 구직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월 2회 이상 구직활동을 했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구직활동 인정 기준도 대폭 완화했다. 고용부는 지침에서 입사지원서 제출과 면접 참여는 각각의 구직활동으로 인정하라고 했다. 상담사가 부여한 과제를 이행하고 상담에 참여하는 것도 구직활동으로 인정된다고 했다. 이 밖에 △같은 날 2개 회사에 입사 지원해도 구직활동 2회 인정 △자격증 시험 응시도 구직활동으로 인정, 떨어졌다 다시 응시하면 총 2회 인정 △시간에 관계없이 하루 봉사활동하면 구직활동 인정, 이틀 이상이면 구직활동 2회 인정 등도 포함됐다.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관련해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온다. 국내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는 최근 한 구직자가 “상담사가 구직활동 월 3회를 요구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올렸다. 해당 글에는 “(입사 지원) 클릭 한 번 더하는 게 어렵나요. 면접은 안가면 그만인데”라는 ‘조언’이 붙었다.
홍 의원은 “실업급여 반복수급 문제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구직활동 점검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정작 취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청년들의 의지를 꺾는 제도”라고 말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업상담사 양성 등 충분한 전달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은 시기상조”라며 “저소득 구직자의 생계 지원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기초생활수급 복지를 늘리는 편이 낫다”고 지적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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