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타버린 듯 말라죽는 과수화상병이 전국 사과농가를 덮쳤다. 인간이 걸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별다른 치료제가 없어 나무에는 치명적인 병이다. 농가들은 발견 즉시 과수를 매몰하고 있다. 이에 따른 공급 감소로 사과 가격 급등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처럼 무섭게 번지는 '과수화상병'…괴사하는 사과나무
14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내 사과농가 중 357곳이 이날까지 과수화상병 확진을 받아 전염 과수를 파묻었다. 의심 신고가 접수돼 검사 중인 농가도 50여 곳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 사과농가는 4만4806곳이었다. 1%에 육박하는 사과농가가 과수화상병 영향권에 든 것이다.

과수화상병은 240년 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과수 질병이다. 1780년 미국 뉴욕 허드슨밸리 근처 과수원에서 의심 증상이 포착됐다. 사과 배 모과나무 등 과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발병했다.

국내에서는 2015년 경기 안성의 배농가에서 처음 발병했다. 당시 농진청은 다각도로 역학조사를 했지만 발병 원인은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수화상병 발생 농가는 2016년 17곳으로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듬해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7년 33곳, 2018년 67곳, 작년엔 188곳으로 증가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더 빠르게 퍼지고 있다.

문제는 과수화상병을 치료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는 것이다. 의심 증상을 나타내는 나무가 있으면 바로 파묻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발견이 늦어지면 급속도로 확산해 과수원 전체를 매몰해야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무서운 병이다.

병을 옮기는 매개체도 확실하지 않다. 사람, 꿀벌 등 곤충은 물론이고 바람과 비를 통해 옮겨진다는 분석도 있다. 농촌진흥청이 올해 초 과수화상병 방제 매뉴얼을 마련했지만 병균이 나무에 달라붙는 것을 막는 수준이다. 이미 전염된 뒤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

농촌진흥청은 과수화상병 치료제 개발이 당분간은 어렵다고 보고 조기 발견에 힘을 쓰고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기존에는 의심신고 접수 후 검사했지만 지금은 과수화상병이 집중 발병하고 있는 충북 지역을 전수조사하는 방식으로 바꿨다”며 “코로나19 때 신천지 교인을 전수 조사했던 것과 비슷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과수화상병 확산세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과수화상병은 25~27도에서 급격히 확산되기 때문이다. 농진청은 최악의 경우 1000곳 이상의 농가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올해 사과 가격 급등도 우려된다. 사과는 지난 4월 저온 피해 영향으로 나무당 열매가 9%가량 감소한 탓에 이미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사과 가격은 이달 들어 전년 동기 대비 44.5% 상승했다. 여기에 과수화상병에 따른 공급 감소까지 더해지고 있어 올해 추석 무렵엔 사과 가격이 ‘금값’이 될 것이란 우려가 많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