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이 9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기 중이던 서울구치소를 나서 귀가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이재용 부회장이 9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기 중이던 서울구치소를 나서 귀가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구속을 면했다. ‘총수 공백’ 리스크를 피한 삼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8일)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오전 2시경 “피의자 구속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며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글로벌 기업 총수인 데다 검찰이 장기간 수사를 이미 진행한 점을 감안했을 때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 부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구속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 과정을 둘러싼 혐의에 대해 검찰이 입증한 내용은 상당 부분 인정하고 ‘본선’인 법정에 가서 다투라는 취지로 공을 넘겼다. 이 부회장 측의 피의자 방어권 보장 필요성을 부각한 측면도 있다.

앞서 영장심사 결과를 두고 크게 3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됐다. 그중 구속영장 발부는 검찰의 완승, 검찰 혐의 입증 부족을 들어 영장을 기각하는 경우가 삼성의 완승이란 관측이 나온 만큼 이날 법원 판단은 ‘무승부’ 평가를 내릴 만하다.

그나마 어느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 ‘판정승’을 거뒀는지도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 법원이 기본적 사실관계나 검찰의 증거 확보를 인정했단 점은 향후 재판에서도 삼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 반면 이 부회장과 함께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이나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의 영장까지 모두 기각해 수사에 제동이 걸린 점은 검찰에도 부담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을 막은 삼성으로선 우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검찰의 영장 재청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 당시에도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한 차례 기각된 후 재청구를 통해 결국 구속된 전례가 있다.

오는 11일엔 이 부회장 측이 “기소 타당성을 시민 눈높이에서 판단해달라”며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개최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 절차를 통해서라도 불기소되는 것을 삼성은 바라고 있지만,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권고가 나와도 검찰이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