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 원칙)를 앞세운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70)을 대한항공 대표이사에서 퇴진시키면서 재계가 충격에 빠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의 경영권을 좌우하는 ‘연금사회주의’ 우려가 커졌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 기업은 290여 곳이다. 10% 이상 보유 기업도 90여 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악용되면 주요 기업의 경영권이 취약해지고 지배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국민연금의 독립성 문제도 논란거리다.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 세계 5대 연기금(자산 기준) 중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 부처(보건복지부) 소속이고, 부처의 장이 위원장인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국민연금이 이번 조 회장의 이사 연임 반대 이유로 든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27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는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현안이다. 무죄추정 원칙을 무시하고 내려진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8월 미국 항공 월간지 ATW로부터 ‘세계 최고 실적 항공사’로 선정되는 등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

경총은 이날 입장문에서 “국민연금 의결권은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이 아니라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라는 재무적 투자자로서의 본질적 역할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배상근 전경련 전무는 “국민연금의 경영참여가 경제계 전체로 확산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돼 투자 및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