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가치 급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터키와 외환보유액이 바닥난 파키스탄이 외환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두 나라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와 외채 부담에다 달러 강세가 겹치면서 자금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국가가 곧 나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26일(현지시간) 달러당 4.8667리라로, 올 들어 28.4% 폭락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21개 신흥국 통화 중 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르헨티나 페소화(-47.2%)에 이어 하락 폭이 두 번째로 크다. 물가가 고공 행진하는데도 중앙은행이 긴축 정책을 펴지 못하면서 통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터키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5.4%로, 2004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터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개입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24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1주일 만기 환매조건부채권 금리)를 연 17.75%로 동결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물가 상승 원인”이라며 금리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당할 위험까지 겹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인 앤드루 브런슨 목사가 테러 지원 혐의로 터키에 억류 중인 것과 관련해 “터키에 대규모 제재를 할 것”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CNN은 터키가 아르헨티나에 이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난 데미르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리라화 가치가 하락해 터키 기업과 은행의 외채 부담이 커졌다”며 “이 때문에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리라화 가치는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말했다.

총선에서 제2야당인 파키스탄정의운동(PTI)이 승리하면서 정권 교체를 앞둔 파키스탄도 심각한 위기다.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참여하면서 외채가 급증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201억달러에서 올 5월 159억달러로 줄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개월치 수입금액밖에 충당할 수 없는 규모라고 전했다.

통화 가치도 급락세다. 달러 대비 파키스탄 루피화 가치는 이달 들어서만 6.6% 하락했다. FT는 지난 25일 치러진 총선에서 크리켓 스타 출신 임란 칸 대표가 이끈 PTI가 승리한 것과 관련해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어 칸 대표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