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자동차와 철강, 조선산업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심각한 판매 부진과 일감 부족으로 실적이 급감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폭탄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어 산업 자체가 붕괴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상습파업’까지 겹쳐 사면초가의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버텼던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리한)가 자금난을 못 이겨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할 정도로 자동차산업의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통상 압력을 견디다 못한 중견 철강 업체들은 앞다퉈 공장 해외 이전을 검토 중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 세계 1위를 독주하던 조선업은 10년여간 29조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수혈받고도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車·철강 '관세폭탄' 초비상… 조선 '수주절벽'에 파업 몸살까지
◆통상압력에 우는 車·철강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14개 철강사가 참석한 가운데 민관대책회의를 열었다. 유럽연합(EU)이 이날부터 23개 철강 제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강 쿼터(수입량 할당) 도입에 이어 EU까지 수입 장벽을 높이자 국내 철강업계엔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이 EU로 수출하는 해당 철강 제품 규모는 330만2000t(2017년 기준). 금액으로는 29억달러(약 3조2800억원)에 달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대형 철강업체가 생산하는 도금강판과 냉연강판 등 판재류 수출이 많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공장과 일자리가 사라지는 ‘산업 공동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경북 포항에 공장을 둔 중견 철강업체 넥스틸은 이달 말부터 생산 라인 5개 중 1개를 미국 휴스턴으로 옮기는 작업에 들어간다.

국내 업체 중 지난해 대미 ‘유정용 강관’ 수출 1위였던 이 회사는 올 들어 75.81%에 달하는 관세폭탄을 맞은 데다 철강 쿼터까지 도입되면서 사실상 수출길이 막혔다. 박효정 넥스틸 사장은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에 이어 EU 등 세계로 확산하면서 대체 시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주요 수출 업종 중 전·후방 연관 산업이 가장 많은 자동차도 미국의 관세폭탄을 맞을 처지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자동차 및 부품에 20~25%가량의 고율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고율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연간 85만 대에 달하는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길이 끊길 것으로 업계는 우려했다. 현대차(30만6935대)와 기아차(28만4070대), 한국GM(13만1112대), 르노삼성차(12만3202대) 등 국내 완성차업체의 대미 수출 비중은 30~70%에 달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연간 145억2721만달러(약 15조5500억원) 규모다. 강성천 산업부 통상차관보와 현대차 등 자동차업계는 이날 미국 상무부가 워싱턴DC에서 연 공청회에 참석해 수입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의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미 정부가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조선 ‘빅3’ 10년 새 매출 반토막

2011년까지 반도체를 포함한 국내 전 업종 가운데 수출액 1위였던 조선업은 해운업 침체에 따른 선박 발주 감소와 만성적인 고비용 구조 탓에 침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체 ‘빅3’의 지난해 매출은 10년 전에 비해 ‘반토막’ 났고, 영업이익은 95% 급감했다.

2008년 20조원에 육박했던 현대중공업의 매출은 올해 8조원대에 그칠 전망이다. 최근엔 ‘가물에 콩 나듯’ 나오는 발주 물량도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운 중국과 싱가포르 조선사에 번번이 빼앗기고 있다. 발주 규모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웃도는 해양플랜트가 대표적이다. 국내 조선 빅3는 지난해 12월 노르웨이 스타토일 FPSO(부유식 원유 생산설비) 수주전에서 싱가포르 샘코프마린에 밀렸다. 올 3월엔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발주한 토르투 해양플랜트도 중국 코스코에 뺏겼다. 조선 빅3의 임금은 중국은 물론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 국가의 근로자들을 채용한 싱가포르 조선사보다 2.6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형/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