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의 88인치 TV > 삼성전자가 내년에 미국 시장에서 82인치 초대형 TV를 현재 판매가의 절반 수준인 4000달러 이하에 내놓는 공세적인 마케팅에 나서기로 했다.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삼성전자 88인치 TV를 한 소비자가 둘러보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 삼성전자의 88인치 TV > 삼성전자가 내년에 미국 시장에서 82인치 초대형 TV를 현재 판매가의 절반 수준인 4000달러 이하에 내놓는 공세적인 마케팅에 나서기로 했다.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삼성전자 88인치 TV를 한 소비자가 둘러보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2004년 삼성전자는 당시 세계 최대 크기인 46인치 LCD TV를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으로 LCD(액정표시장치)를 중심으로 TV 대형화 추세를 주도하면서 일본 업체들이 주축이 된 PDP TV 진영을 퇴출시켰다. 이후 12년간 ‘글로벌 1위’ 지위를 지켜온 삼성전자가 다시 크기를 앞세워 전 세계 TV시장을 재편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82인치 TV를 간판상품으로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경우 초대형 TV시장에도 메가톤급 충격을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초대형 TV에서도 초격차 전략

삼성전자의 전략은 최근 세계 TV시장 추세와 맞물려 있다. 세계 TV 판매량은 2014년 2억3200만 대를 정점으로 하향 추세로 접어들고 있다. 올해는 2억1900만 대까지 내려앉을 전망이다. 삼성 내부에서도 TV시장의 ‘양적 성장’은 끝났다고 보고 있다. 수량 기준으로 세계 TV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TV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2014년 5294만 대였던 삼성전자의 TV 판매량은 올해 4300만 대가량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삼성전자, 초대형 TV '가격파괴'… 초격차 전략으로 1위 굳히기
반면 프리미엄과 대형 TV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GfK와 NPD는 2014년 12%였던 60인치 이상 TV 비중이 올해 19%로 1.5배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50인치 이상 TV가 차지하는 비중(금액 기준)도 올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중소형 TV보다 가격이 비싼 대형 TV의 판매량이 늘면 전체 판매 수량은 줄어들더라도 매출은 증가한다. 수익성도 중소형 TV보다 뛰어나 TV업체로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추세에 맞춰 대형 TV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88인치 SUHD TV를 내놨으며 올해 8월에는 88인치 QLED TV도 3300만원에 내놨다. 올해 8월까지 60인치 이상 대형 TV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2%에 이른다. 82인치 TV와 관련한 삼성전자의 파격적인 가격 정책은 경쟁 업체와의 초격차 전략을 통해 시장 리더십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프리미엄 TV시장을 둘러싼 업체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도 이유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프리미엄 TV시장에서의 압도적인 우위가 OLED TV의 시장 진입으로 흔들리고 있어서다. 조사 업체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 한때 프리미엄 TV시장에서 LG전자와 소니에 밀리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400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82인치 TV를 내놓으면 QLED 진영과 OLED 진영을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시장의 대결 구도는 새롭게 재편된다. 65인치 OLED TV나 QLED TV를 염두에 두던 소비자가 82인치 LCD TV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초대형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발(發) 가격 파괴 시작되나

삼성전자는 올해 80인치대 일반 LCD TV를 1000만원대에 내놔 ‘구매 가능한 수준’까지 가격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직은 미국 시장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82인치 TV값이 4000달러(약 440만원) 이하로 떨어지면 82인치 이하 TV의 판매가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국내에서 삼성전자의 77인치 LCD TV는 200만원대 중반, 65인치 TV는 100만원대 중반까지 가격이 내려와 하락 폭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가격 조정은 불가피하다.

글로벌 시장 변화를 주도하는 미국에서는 이미 가격 파괴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중국 하이센스가 77인치 TV를 999달러에 판매해 눈길을 끌었다. 2위 업체보다 두 배 이상의 생산시설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는 똑같이 가격을 내리더라도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사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QLED TV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계속 공략하는 한편 합리적인 가격의 초대형 TV로 경쟁 업체들을 견제하는 ‘투트랙’ 전술이다.

생산 계획도 다시 짜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해외 일부 설비를 조정해 전체 TV 생산 규모는 줄이면서 대형 TV 생산 비중은 확대할 계획이다. 대신 하이센스 등 중국 업체들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40인치대 TV 생산량은 대폭 줄일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초대형 TV 생산을 늘리기 위해 경쟁 관계에 있는 LG디스플레이에까지 손을 내밀었다. 이르면 이달 말부터 LG디스플레이에서 65인치와 75인치 LCD 패널을 공급받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최대 TV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는 압도적인 주문 물량을 앞세워 대만 등 해외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70인치 이상 LCD 패널을 확보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세계 시장 1위인 삼성전자가 내년 시장 전략을 대형화로 잡으면서 이 같은 추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TV 제조사는 한 곳도 없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선진국 시장에서 주력 TV 제품의 크기가 50~60인치에서 70~80인치로 업그레이드되며 TV의 대형화 추세가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