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건강보험 보장범위 확대’와 ‘실손의료보험료 인하’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병원들의 의료비 책정 기준을 개혁하는 등 제도적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험금을 노린 병원들의 과도한 의료비 책정과 환자들의 ‘의료쇼핑’, 건강보험공단과 보험회사의 보험금 중복 지급 등이 개선되지 않으면, 건강보험 보장범위가 확대된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실손보험 부담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실손보험료 낮춘다는데…보험사 "과잉진료 해결부터"
◆건보 본인부담금 상한 100만원

병원에서 책정하는 진료비는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급여’와 그렇지 않은 ‘비급여’로 나뉜다. ‘급여’ 항목이라고 해도 건강보험이 진료비를 100% 보장해주진 않는다. 치료 종류에 따라 급여 항목의 70~80%가량을 지원한다. 나머지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다만 본인부담액이 무한정 늘어나지 않도록 소득 수준에 따라 121만~506만원으로 상한선을 뒀다.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과 건보 지원을 못 받는 비급여 항목은 민간 보험사의 실손보험 가입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다. 실손보험료는 월 1만~2만원가량이다. 보험사는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 △비급여 항목을 합친 금액에서 80% 혹은 90%를 보험금으로 준다. 과거에는 90%까지 보장해줬지만 최근 나온 실손보험 상품은 대부분 80%가량만 보장한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건강보험 공약의 골자는 두 가지다. 우선 저소득층의 본인부담 상한액을 연간 100만원까지 낮추겠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치료 항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넓어지면 보험사가 내는 실손보험금 지급이 줄고, 따라서 실손보험료 인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손보험 수익 강화로 이어질까

문제는 보험사들이 건강보험의 보장범위 확대가 보험사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건보공단과 보험사의 보험금 중복 지급 문제가 있다. 건보공단이 본인부담 상한액 이상 금액을 환급해줘도 민간 보험사가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일부 가입자는 환급금과 보험금을 이중으로 받고 있다.

무엇보다 병원들의 과잉진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실손보험료를 인하하기 어렵다는 게 보험사의 분석이다. 예를 들어 대다수 실손보험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때 가입자가 입원하면 전체 치료비의 90%를 지급하지만 통원 치료하면 최대 30만원 안팎만 지급한다. 이를 이용해 일부 병원에선 과잉진료를 한 뒤 보험금을 타내고 있다.

또 병원마다 비급여 항목에서 같은 종류의 치료임에도 매기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문제도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1년 109.9%에서 최근 130% 수준까지 올라갔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병원들이 지속적으로 편법을 이용해 다른 비급여 항목을 만들어 과잉진료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우선 보험사의 손해율 변화 추이부터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다. 다만 보험사들은 여전히 정부 눈치를 살피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실손보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한 공약이 보험료 인하 압박으로 이어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신영/김일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