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미루고 英 ARM에 35조원 베팅…손정의 "IoT는 패러다임의 이동"
전문가 "극소수 회사만 감수할만한 리스크…손정의 일생일대의 도박"

일본 IT·통신기업 소프트뱅크의 창업자인 한국계 손 마사요시(손정의) 사장은 내년 8월 60세 생일에 깜짝 은퇴할 생각이었다.

생일 파티에 회사 임원과 친구들 앞에서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한테 자리를 넘긴다는 소식을 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돌연 마음을 바꿔 은퇴를 5∼10년 미루기로 했다.

그는 지난달 주주총회 하루 전에 아로라 부사장의 퇴진을 알리면서 "아직 몇 가지 미친 아이디어에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궁금증을 자아냈던 '미친 아이디어' 중 하나는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에 대한 대담한 투자였다.

그는 이 분야에서 유망한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234억 파운드(약 35조원)에 사기로 했다고 18일 발표했다.

그는 "나는 항상 2∼3년마다 큰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한 바 있다.

이번 ARM 인수 합의는 2013년 미국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를 216억 달러에 산 지 3년 만의 일이다.

19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손 사장은 전날 런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계약에 대해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흥분된다"고 말했다.

58세인 손 사장은 주요 일본 기업의 최고경영자로는 아직 꽤 젊은 편이다.

닛케이아시안리뷰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그는 19세에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20대에 사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30대에 자산을 쌓고, 40대에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지고, 50대에 사업을 마무리 지어 60대에 회사를 후계자에게 물려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의 계획대로였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유학할 때 만든 휴대용 자동 번역기를 샤프에 1억엔에 팔았다.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돌아와 소프트뱅크를 세웠다.

컴퓨터 프로그램 도매업체였다.

그는 일본의 IT 분야에서 점차 명성을 얻었고 현금을 쌓아갔다.

2006년에는 영국 보다폰그룹의 일본 자회사를 인수해 이동통신업에 뛰어들었다.

닷컴버블 붕괴에서 막 회복되기 시작했던 당시 소프트뱅크는 보다폰을 사려면 1조7천500억 엔을 조달해야 해 자금난이 심했다.

임원들에게 "두뇌가 고장 날 때까지 생각하라"고 고함친 그는 회사 자원을 총동원해 인수에 성공했다.

단순히 휴대전화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바일 인터넷 플랫폼을 확보하는 것이 전략적 목표였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이 무선 인터넷에 쉽게 접속하는 시대를 예상한 그는 정보혁명의 파도를 타기 위해 도박한 것이었다.

1년 뒤인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손 사장의 베팅은 현명한 판단으로 결론 났다.

그는 애플이 새로운 형태의 휴대전화를 개발한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스티브 잡스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소프트뱅크는 몇 년간 일본 내에서 아이폰의 독점적 판매처라는 지위를 이용해 모바일 서비스 시장에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2013년에는 스프린트를 샀다.

그는 미국의 다른 통신업체 T모바일도 인수할 계획이었지만 미국 당국의 반대로 좌절됐다.

스프린트의 실적 부진은 소프트뱅크의 큰 문제로 남아있다.

소프트뱅크의 매출은 10조엔(약 108조원)에 육박한다.

알리바바 등 아시아의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해 성공을 거둔 손 사장의 제국 건설은 완성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소프트뱅크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손 사장은 자동차에서 공장 기계까지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ARM 인수로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려 하고 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인텔의 컴퓨터 칩에 매료돼 칩을 확대한 사진을 베개 밑에 깔고 잤다는 일화가 있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항상 감탄해왔던 회사"라면서 "소프트뱅크의 일부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세계 스마트폰의 95% 이상에 ARM이 설계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들어간다.

이 회사는 최근 몇 년 사이 IoT 반도체 포트폴리오 개선에 집중해왔다.

사물인터넷 기기에는 스마트폰에 쓰이는 것보다 작고 저전력 반도체가 쓰인다.

손 사장은 Iot에 대해 "패러다임의 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IoT는 모든 인류, 그리고 모든 제품에 크나큰 기회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인프라 등 반도체가 들어간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니퍼리서치에 따르면 Iot 연결 기기는 2020년까지 385억대로 2015년(134억대)보다 28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커넥티드카는 ARM 반도체의 큰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손 사장은 "자동차가 스마트해지면 더 많은 칩이 차 안에 통합돼야 한다.

자율주행차는 특히 그렇다"면서 "자동차는 그 자체가 수많은 칩으로 구성된 슈퍼컴퓨터가 될 것이다.

그래서 ARM은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TMT리서치의 닐 캠플링은 "ARM은 파괴적 혁신 기업이다.

모바일 프로세서 지배력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으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브렉시트 이후 엔화 대비 파운드화가 급락했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ARM의 전·현직 CEO를 여러 번 만났지만 ARM의 이사회 의장은 2주 전에서야 만났다고 시인했다.

소프트뱅크는 수년간 막대한 투자를 통해 통신과 인터넷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손 사장은 자신이 "큰 베팅"을 했다면서 이번 인수를 통해 영국에서 단물만 빨고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분야 전문인 한 사모펀드 매니저는 소프트뱅크의 투자에 대해 "소트프뱅크를 제외하면 몇 안 되는 회사만 감수할만한 리스크"라면서 "미스터 손에게는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FT에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kimy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