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무늬만 성과연봉제', 연봉 그대로…수당만 차등지급
59개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중 상당수는 기본급은 깎이지 않는 ‘무늬만 성과연봉제’인 것으로 조사됐다. 연봉제 도입안에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기존 호봉제로 회귀한다’는 문구를 포함한 곳도 있는 등 정부 압박 때문에 ‘일단 도입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22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한국전력의 5개 발전자회사인 남동·중부·남부·서부·동서발전 중 동서발전을 제외한 네 곳은 노동조합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했다. 이들 네 곳은 직원들의 기본 연봉은 줄이지 않고 초과근무수당 연차수당 등의 이름만 ‘성과연봉’으로 바꿔 직원 평가에 따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꾸려면 노조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이들 회사는 노조 동의를 못 얻었기 때문에 전체 연봉 체계를 건드리지 못하고 각종 수당의 이름만 바꾸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도 취업규칙 불이익에 해당할 수 있어 소송에 휘말리면 패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남동발전 이사회는 지난 4월 통과시킨 성과연봉제 도입안에 아예 ‘본 규정이 법원 등 사법기관에 의해 무효로 된 경우에는 소급해 개정 전 규정에 따르고 그에 따라 정산하기로 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패소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문구를 넣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공공기관에서는 노조위원장이 기관장에게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발표부터 하라. 우리가 소송으로 시간을 벌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장은 성과연봉제를 관철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고, 노조는 소송으로 실제 도입은 막겠다는 암묵적 거래다. 공기업 관계자는 “성과연봉은 2018년부터 집행되는데 그때는 기관장과 장관들이 다 교체됐을 시기”라며 “법적 분쟁 등으로 조직만 망가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가져온 안이 기재부 권고 기준에 맞으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법적인 문제 등은 고려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노사관계 전문가는 “정부가 성과연봉제 내용보다 ‘도입하기로 했다’는 결과 보고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백승현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