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기업들, 빚 돌려막기로 하루하루 힘든데…"원자재 보상은 왜 안 해주나"
“개성공단 대체 공장을 지을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이번달 말에 대금 결제를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양말과 여성용 레깅스를 제조하던 A사 사장은 말일이 오는 게 두렵다. 구입한 원자재 값을 치러야 하는데 현금이 충분하지 않아서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10여곳의 바이어 중 절반가량이 지난달 말 결제를 하지 않았다. 제공한 원자재가 임가공비보다 많다는 게 이유였다. A사는 개성에 50억원어치의 원·부자재를 남겨두고 빠져나왔다.

바이어에게 돈을 받지 못하면 말일에 내야 하는 원자재 구입 비용과 대출 이자를 충당하기 버거운 상황이다. 그는 “국내 공장을 확장해 개성공단을 대체할 계획인데 그때까지는 돈을 빌려 막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10일이면 ‘개성공단 사태’ 한 달째를 맞는다. 이곳에서 제품을 생산하던 123개 기업 상당수가 고객사와 대금 결제를 두고 ‘승강이’를 벌이는 중이다. 바이어로부터 받아야 할 돈이 재료비보다 훨씬 큰데도 결제를 해주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부족한 자금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충당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피해 업체를 상대로 저리 특별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갚아야 하는 돈이다. 경협보험에 들었다고 해도 원·부자재는 보상해주지 않는다. 개성공단 기업이 모두 감당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가동 중단으로 인한 재고자산 피해만 2464억원으로 추산했다. 이 금액 중 일부라도 정부에서 대출이 아닌 ‘보상’을 해달라는 게 이들 기업의 요구사항이다. 다른 개성공단 기업인도 “개성공단에 두고 온 원·부자재를 왜 우리가 전부 책임져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피해 기업을 돕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지난 주말 통일부와 개성공단 대표 간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잠잠해 보이는 최근 분위기에 대해 한 기업인은 “개성공단 폐쇄라는 통치행위에 불만을 얘기하면 안 되는 분위기라 조용한 듯 보이지만 보상이 지연되면서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전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