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자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 현찰을 쌓아두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22일 보도했다.

일본의 가구 회사인 시마추(島忠)는 지난주 금고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반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700달러짜리 금고는 현재 품절 상태여서 한 달 뒤에나 주문이 가능하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시마추 판촉부서의 한 직원은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은 방수와 방화 기능에다 10자리의 번호 입력이 필요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금고 가격은 사이즈가 클수록 높다.

한국의 금고 제작회사인 ㈜디플로매트는 4년전 일본의 금고 수요 증가를 예상해 4년전 도쿄에 지사를 개설했다.

다카하시 마코토 일본 지사장은 지난 몇 달 동안 디플로매트의 금고 수요가 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찰 선호 현상과 함께 사회보장과 세금 등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본에 거주하는 주민(외국인 포함)에게 12자리의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마이넘버'제도가 실시된 것도 금고 수요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현금을 금고에 쌓아둔다는 것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취지와 역행하는 것이어서 우려되는 조짐이다.

일본은행은 돈이 시중에 더욱 활발하게 돌도록 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예금에 사실상 이자가 붙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이지만 마이너스 금리가 도입된 이후로는 조금이라도 이자가 생기는 금융상품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스미토모 미쓰이(住友三井) 파이낸셜 그룹은 최근 보통 예금의 이율을 종전 0.02%에서 0.001%로 낮췄다.

이는 1천달러를 은행에 맡긴다면 1년에 겨우 1달러 정도의 이자를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주말에 현금자동지급기를 이용할 때의 수수료와 같은 금액이다.

단기 채권 투자로 자금을 운용하는 머니마켓펀드의 일부는 최근 고객 유치를 중단했고 보험료 수입의 상당부분을 일본 국채 매입에 투입했던 보험회사들은 일부 보험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일본인들의 현찰 선호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금리가 거의 제로(0)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진 1990년대 말부터 현찰을 보유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투자전문 뉴스레터인 오리엔탈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찰 선호 현상에 힘입어 일본경제 규모 대비 지폐 발행량은 1995년 이후 3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레터 발행인인 리처드 카츠는 일본은행의 논리에 따르면 국민들이 돈을 리스크가 더 높지만 수익도 더 높은 자산으로 옮겼어야 하지만 오히려 아무런 이자도 붙지 않는 현금으로 대거 이동한 셈이라고 논평했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