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미국경제학회] "美 위기 탈출했다지만…가계부채에 발목 잡힐 수도"
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는 경제학계의 화두인 ‘장기침체론(secular stagnation)’을 놓고 두 석학의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다. 장기 침체는 경제성장이 미미하거나 성장률 제로(0)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는 것으로, 경기 순환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원인에 의한 침체를 뜻한다.

로렌스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미국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조만간 성장률 0%대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추락을 경험할 수 있다”며 수요 부족으로 인한 장기침체론을 폈다. 그는 일본과 유럽 경제가 예측과 달리 극심한 부진을 보이는 것을 장기 침체의 예로 든 뒤 미국 경제도 가계부채로 인한 가처분 소득의 감소를 볼 때 지속 가능한 회복세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단정했다. 특히 미국은 현재 이자율이 제로 금리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서머스 교수는 장기 침체의 원인으로 인구 증가율 정체, 안전자산 선호도 증가, 소득 불평등 심화 등을 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프라 확충 같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총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뒤 “돈을 푸는 통화정책만으로는 가격 거품과 함께 금융의 불안정성만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머스 교수의 주장에 대해 “장기 침체의 원인은 공급 부족에 있다”며 “노동시장과 산업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반박했다.

고든 교수는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를 뜻하는 ‘아웃풋 갭(output gap)’이 거의 사라지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며 생산성 둔화, 인구 증가율 하락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특히 지금의 생산성 증가율은 1970년 초반에서 1990년 중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의 역동성 부족을 주 원인으로 꼽았다. 글로벌 전자기업들이 1970년대 VCR을, 1980년대 CD플레이어를, 1990년대 후반 HD(고화질) TV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과 수익을 만들어냈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혁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발달은 과거에 비해 시장 창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보스턴=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