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레이의 모습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죠."


오카와 미치오 도레이 고문(68)은 일본 섬유산업의 산 역사다.


일본 화섬산업이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3년에 입사,도레이의 발전 과정과 경쟁사들의 흥망성쇠를 두눈으로 지켜봤다.


도쿄 니혼바시의 도레이 본사에서 만난 오카와 고문은 "위기에 놓인 한국 섬유산업에 과연 돌파구가 있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일본 섬유업계도 한국 대만 업체의 부상,플라자합의에 따른 엔고,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아시아 외환위기 등 수많은 위기를 경험했지만 그런 위기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도레이의 영업이익 추이는 그의 말을 그대로 증명한다.


1985년 플라자합의,1992년 일본 경제 거품 붕괴,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등 위기가 있을 때마다 이익이 뚝 떨어졌지만 1∼2년 안에 위기 전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올렸다.


위기 때마다 수동적인 비상경영이 아닌 공격적인 경영혁신전략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도레이가 21개국에서 237개 생산 및 판매법인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플라자합의로 만성적인 엔고현상이 생기면서부터다.


수출 채산성이 떨어지는 국내 생산 대신 공격적으로 해외에 투자한 도레이는 1986년 336억엔까지 감소했던 영업이익을 1987년 609억엔으로 끌어올렸다.




플라자합의 전인 1984년 444억엔보다 50% 가까이 오른 수치다.


뿐만 아니라 먼저 수요를 창출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프리마케팅(Pre-Marketing)'을 도입,재고량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인사평가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체질을 개선했다.


도레이에 이어 일본 2위 화섬업체인 데이진도 플라자합의를 제품 구조 혁신의 계기로 삼았다.


당시 '슈퍼실크'라 불렸던 고부가가치 신합섬 소재로 '빅히트'를 쳤다.


동시에 직물 염색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끊임없이 기술과 제품을 혁신했다.


폴리카보네이트 아라미드 섬유 등 첨단 소재를 전략사업으로 육성한 것도 이 즈음이다.


최근 5년간 매년 70∼80%씩 영업이익을 끌어올리고 있는 도레이의 힘도 위기에서 비롯됐다.


외환위기의 여파와 세계 정보기술(IT) 경기의 거품 붕괴로 2001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낸 도레이는 NT-21(뉴도레이-21)이라는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2단계에 걸쳐 가동 중이다.


사카키바라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들은 모두 스스로 임금을 동결하고 상여금을 반납했다.


쓸데없이 발생하는 유통 마진을 없애고 '진짜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를 파악하기 위해 세부적인 시장 조사에 나섰다.


현재 한국 섬유산업의 최대 위기 요인인 중국도 일본 업체들에는 기회다.


요시카와 마사루 데이진 홍보·IR실장은 "의류용 섬유 사업에서는 중국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지만 그동안 투자해온 산업용 섬유를 수출할 수 있는 엄청난 시장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유럽 등지의 선진 회사들이 생산 거점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에 산업용 섬유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시이 긴지로 도레이 섬유사업본부 상무는 "중국 업체들은 감가상각비를 계산하지 않는 등 원가를 산정하는 '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과 경쟁한다는 건 무의미하다"며 "일본만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면 중국은 분명히 기회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화섬산업의 문제는 중국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