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총체적인 저(低)생산성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잠재성장률(5%대 초반)을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 바로 '생산성의 위기'다.


'저생산성병(病)'은 이미 중증(重症)이다.


우선 노동부문.


1986년부터 5년간 2.47%에 달했던 취업자(노동)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1996∼2000년에는 0.4%로 낮아졌다.


자본 생산성 기여도 역시 같은 기간 중 3.81%에서 2.45%로, 총요소생산성은 2.09%에서 1.11%로 낮아졌다.


그 결과가 뚝 떨어진 성장률이다.


'생산성 위기'는 예고된 일이었다.


미국의 폴 크루그만 프린스턴대 교수가 1994년 '아시아 기적의 신화(The Myth of Asia's Miracle)'에서 한국이 '생산성 향상없는 성장'이라는 모순에 빠져있다고 지적한 것은 대표적인 경고신호였다.


투입요소의 증가, 다시 말해 물량 투입을 빼고 나면 성장 요인을 설명할게 거의 없다는 비판이었다.


'아시아의 네마리 호랑이'중 하나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이런 '생산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80년대부터 정부 주도아래 '도약 싱가포르(Spring Singapore)'라는 독특한 생산성 향상 운동을 벌였고, 그에 힘입어 1989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한데 이어 94년엔 2만달러를 넘어섰다.


홍콩은 철저한 시장경제 정책을 토대로 거대한 중국을 배후로 삼는 시장확대 전략을 일관되게 편 끝에 88년에 1만달러, 94년에 2만달러를 달성하는 등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


오직 한국만이 지금까지 1만달러에 갇혀 있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잠재성장률 7%로 끌어올리기'와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 등 국가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성장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그러나 정부는 생산성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설비투자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데도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수도권집중 억제 등의 규제가 버젓이 남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온갖 명분으로 기업들의 계열사 출자 관행까지 문제삼고 있다.


투자를 늘리려면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해야 하고, 대주주 지분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책은 거꾸로다.


노사분규는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정부는 노사간에 산술적인 합의만을 중시할 뿐 질적인 측면을 도외시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만달러 늪에서 벗어나려면 적대적인 노사관계와 집단갈등을 시급히 해소해야 하지만 정부는 그럴듯한 '당사자 해결' 구호만 내세우고 있다.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이해집단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양국 정부간 합의를 해놓고도 국내 농민단체의 반발과 정치인들의 눈치보기로 표류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원천인 생산성을 높이려면 자본과 노동 기술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이를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시너지 효과(총요소생산성 제고)를 내야 하는데도 한국은 '이제는 분배'를 외치는 관념적 운동가들에 사로잡혀 있다는 안팎의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고 내년에도 강한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은 저생산성 경제구조의 필연적 귀결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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