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에 집착한 정부의 대기업 정책은 벤처업계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대기업들이 문어발식 투자라는 비난을 받자 벤처투자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한도제를 외환위기 직후 없앴더니 대기업들이 문어발식 투자를 일삼아 계열사가 급증했기 때문에 이 제도를 부활시켰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SK그룹의 경우 올들어 15개 기업을 계열사로 편입시켰으나 이중 14개는 자본금이 10억원 안팎인 정보통신 등의 벤처기업이다.

"정부가 한 쪽에선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며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해놓고 다른 한 쪽에선 "계열사를 늘렸으니 규제하겠다"고 칼을 대니 헷갈린다"고 S사의 K상무는 말했다.

순자산액이 1천억원인 삼성SDS의 경우 출자총액이 5백억원에 달한다.

출자총액규제로 출자액중 절반 가량을 줄여야하는 상황이다.

이 회사는 출자총액의 90% 정도를 안철수연구소 등 벤처기업 투자에 집중해왔다.

최근에는 신규출자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이며 기존 출자금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대기업이 출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면 그동안 구축해왔던 대기업과의 제휴선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은 물론 엉뚱한 기업에 인수.합병(M&A)되는 위기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지정을 받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출자총액 한도규정에 포함되지 않지만 이러한 예외조항은 별로 실효가 없다는 게 IT(정보기술) 업계의 반응이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