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달성했다. 사진은 테슬라 캘리포니아 공장. /사진=AFP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달성했다. 사진은 테슬라 캘리포니아 공장. /사진=AFP
제조에 필요한 주요 원자재 값이 급등하면서 전기차 가격도 덩달아 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원자재 수급 문제로 가격이 뛰는 동시에 생산에도 차질을 빚으면서 당초 계획한 전기차 보급 목표 달성조차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일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리튬 가격의 지표가 되는 탄산리튬 가격은 2020년 11월과 비교해 지난달 말 기준 1086%나 치솟았다. 같은 기간 수산화리튬 가격도 910% 뛰었다. 수산화리튬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니켈 함유량 80% 이상의 양극재에 쓰이는 주원료다.

배터리 주원료인 리튬과 니켈 값도 폭등했다. 런던금속거래소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올 들어서 현재까지 45.8%, 리튬 가격은 38.4% 뛰었다. 니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리튬은 칠레의 국유화 이슈로 가격이 폭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리튬을 비롯해 코발트, 니켈 등 배터리 양극재 가격은 최근 1년간 평균 150% 급등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리튬 가격이 미친(insane) 수준까지 올랐다"며 "비용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채굴과 정제에 직접 대규모로 진출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실제 테슬라는 지난달 국내에서 가장 저렴한 등급인 '모델3'의 최저 가격을 6469만원까지 올렸다. 출시 당시 보조금을 받으면 3000만원 후반에도 구매할 수 있던 모델3가 이제는 보조금을 받아도 6000만원 가까이 내야 할 정도로 가격이 급등했다.

전기차는 같은 등급의 내연기관 모델보다 1000만원가량 비싸도 충전료가 저렴한 장점이 있었지만, 현재는 2000만원가량 더 비싸져 상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일례로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GV70 내연기관차량은 기본 트림이 4904만원인 데 비해 전동화 모델의 경우 7332만원으로 가격차가 상당히 벌어졌다.


미국 전기차업체 리비안의 로버트 스캐린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전기차 배터리 원료 채굴부터 가공, 배터리 셀 제작까지 모든 과정에서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은 애피타이저(전채요리)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실제 지난해 전기차에 탑재된 리튬이온 배터리팩 평균 가격은 kWh당 147~153달러였다. 업계는 배터리 가격이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차츰 내려가 kWh당 100달러까지 가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가격이 비슷해질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당분간 이같은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배터리 주요 원자재 대체재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오익환 SNE리서치 부사장은 "원자재가 매장된 광산을 채굴해 제품으로 공급하기까지 최소 4~10년가량 걸려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당장 공급량을 늘릴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국제 원자재 시장조사기관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에 따르면 전기차 핵심 동력원인 리튬이온 배터리 수요는 2015년 59GWh(기가와트시)에서 지난해 400Gwh로 급증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다시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요가 늘어 공급이 받쳐주지 않으면 가격 상승에 불을 지필 것이란 얘기다.

이 추세대로라면 정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최근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 조정하면서 오는 2030년 전기차 누적 보급 목표를 385만대에서 450만대로 올려잡았다. 하지만 반도체 수급난에 원자재값까지 뛴 탓에 올해 목표(누적 43만대) 달성조차 불확실해졌다.

지난해 국내에서 전기차는 7만1000여대 판매돼 보급 8년 만에 누적 23만대를 돌파했다. 올 1분기에는 2만7800여대 판매됐다. 업계 관계자는 "전동화로의 전환은 불가피하지만 원자재값 폭등이 장기화하면 전환 속도가 늦춰져 예상치 못한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며 "전기차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도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