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반복 암기·따라읽기 제재
만3세 미만은 인지교습 전면 금지
영유 종일반 운영 어려워질 듯
놀이수업으로 규제 피해갈 수도
“‘캔(Can)’. 크 발음으로 시작하려면 빈칸에 어떤 알파벳이 들어가야 할까.”
한 학생이 알파벳 C를 찾은 뒤 동그라미를 그려보지만 제대로 하지 못해 강사의 도움을 받는다. 이 학생의 나이는 만 3세. 소근육 발달이 덜 돼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어려운 아이가 ‘쓰기 훈련’을 하는 것은 ‘4세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다. 4세 고시는 유명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의미한다.
◇ 정부, 고강도 대책 내놨다
내년부터 4세 고시 대비반으로 불리는 학습식 영어학원들이 영업을 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교육부는 1일 ‘아동 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레벨테스트, 유해교습행위, 과대·허위광고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4세 고시, 7세 고시 등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영유아 사교육 시장을 바로잡고, 과도한 조기 경쟁과 선행 학습으로 인한 발달 저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유해교습행위 금지는 ‘장시간 주입식 교육’을 막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만 3세 미만 영아를 대상으로 한 인지교습은 전면 금지하고, 3세 이상 유아를 대상으로 한 인지교습은 1일 3시간으로 제한한다.
인지교습은 ‘강사가 주도해 문자 언어 수리 등 교과목의 지식을 주입하는 교습 행위’로 규정했다. 교육부는 “‘A는 Apple’이라고 칠판에 적고 아이들이 크게 10번씩 따라 읽게 하거나, 알파벳 쓰기 워크북 등을 매일 일정량 채우게 하는 경우”를 인지교습의 예시로 제시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게 하고, 원서 독해와 영어 글쓰기 훈련을 시키는 것도 인지교습에 해당한다.
◇ 영어유치원도 규제 대상
인지교습의 범위를 폭넓게 적용하면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도 규제 대상이 된다. ‘학습식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곳들은 미국 초교생 교과서로 수업을 하고, 단어 시험과 독해 및 글쓰기 훈련은 물론 방과 후 ‘숙제반’까지 운영한다.
강민규 교육부 영유아정책국장은 “이번 대책은 영유아 학원의 잘못된 교습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는 아주 강력한 대책”이라며 “만 3세 미만에게는 선행학습을 시키지 말라는 의미로, 영어유치원은 종일반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시험을 통한 비교·서열화도 금지한다. 영어유치원에서 치러지는 각종 시험, ‘SR 테스트’ 등 독해력 평가 점수 공개도 할 수 없다. 한국어 사용 시 벌점이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도 금지한다.
규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과징금은 매출의 최대 50%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과태료 상한도 현행 3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제재가 누적되면 교습정지 또는 등록말소를 당할 수 있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학원법 개정안을 올해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관련 법안이 올해 통과되면 내년 상반기부터 규제가 적용될 전망이다.
◇ ‘놀이수업’은 가능? 실효성 우려
현장에서는 인지교습의 정의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업의 형식을 조금만 바꿔 놀이수업이라고 표현하면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교육부는 숫자 카드를 보고 1부터 100까지 외우도록 하는 것은 안 되지만, 모래성에 깃발을 꽂는 방식으로 수개념을 익히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영어학원 원장은 “대부분 영어유치원이 이미 ‘몰입형 환경’을 강조하기 때문에 공부를 놀이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놀이 형식으로도 충분히 선행학습이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