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최근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탈원전 정책을 본격 시행한 지 만 10년, 지난해 5월 마지막 원전을 세운 뒤 약 10개월 만이다. 일차적 원인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업체 TSMC와 인공지능(AI) 서버 기업 폭스콘 등을 중심으로 한 전력 수요 폭증에 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주요 발전원인 액화천연가스(LNG)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도 영향을 줬다. 산업 수요와 전력 공급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탈원전을 밀어붙인 정치권의 오판이 대만 산업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 원전 재가동 공식화
30일 외신에 따르면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 21일 경제단체 행사에서 “제2·3 원전이 재가동 조건을 갖췄다”며 “전력 정책에 AI 관련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지에선 사실상 원전 재가동을 공식화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전력 공기업인 대만전력공사는 27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마안산 원전의 재가동 제안서를 제출했다.
2016년 집권한 대만 민주진보당은 이듬해 탈원전 정책을 공식화했다. 당시 차이잉원 총통은 가동 중이던 원자로 6기를 2025년까지 폐쇄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른바 ‘비핵가원’(非核家園·핵이 없는 터전) 정책이다. 이후 민진당 집권이 이어지며 지난해 10월에는 원전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발전원에서 LNG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반도체·AI 전력 수요 폭증
이는 최근 ‘무리수’였다는 게 확인됐다. 대만 주력 산업은 파운드리와 최첨단 패키징(여러 칩을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공정) 등을 포함한 반도체 제조업이다. AI 시대를 맞아 고성능 칩 제조 수요가 커져 TSMC 등 대만 반도체 기업에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AI 인프라와 관련해 전반적인 투자도 늘고 있다. 라이 총통은 지난해 “대만은 이제 AI 섬”이라고 선언하고 관련 산업 투자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폭스콘과 페가트론, 인벤텍, 위윈 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이 첨단 AI 서버 조립 사업에 주력하면서 전력 소모량은 날로 늘고 있다.
대만전력공사에 따르면 2030년까지 필요한 신규 전력은 5기가와트(GW)로 최근 10년간 증가한 발전량의 약 두 배다. 원자력발전소 5기를 지어야 감당할 수 있는 전력량이기도 하다.
◇TSMC 살리기 돌입
중동 전쟁으로 발전원의 50%를 차지하는 LNG 조달에 대한 우려가 커진 건 ‘원전 재가동’에 기름을 부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대만은 LNG 수요의 100%를 해외에서 조달하며 이 중 37%는 중동에서 수입한다. 현재 대만 LNG 재고는 12~14일치로 주요 제조업 중심 국가 중 가장 적다. 라이 총통은 “추가 조달을 통해 4월 수요를 맞출 수 있고 5월에도 약간만 부족하다”고 설명했지만 국민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대만인이 가장 우려하는 건 대만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TSMC의 생산 차질이다. TSMC가 2024년 쓴 전력량은 255억5000만킬로와트(㎾)로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2838억2000만㎾)의 9.0%에 달한다.
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TSMC 생산 라인은 2028년까지 ‘완판’됐다. 하지만 생산 라인에 전기가 10초라도 끊어지는 상황이 생기면 TSMC는 사업 신뢰도에 타격을 받는다. 고객사가 이탈할 가능성도 크다. 숀 킴 모건스탠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반도체 생산 중단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 등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 정부는 기업에 전력을 우선 배정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27일 산업용 전기요금 동결을 결정했다.
영국 옥스퍼드리서치는 “대만 정부는 단기적으론 반도체 기업을 보호할 가능성이 크지만, 전력이 부족해지면 방법이 없을 것”이라며 “최첨단 칩 제조는 전력 수급에 민감하기 때문에 칩 생산도 차질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