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와인판은 이 한 병이 뒤집었다…'최하위 등급'의 반란 [변원규의 잔 들기 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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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를 바꾼 와인 한잔
티냐넬로와 수퍼투스칸의 탄생
티냐넬로와 수퍼투스칸의 탄생
토스카나(Tuscany)의 와인도 그랬다. 그리고 와인의 세계에서 그 결심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 있다. 공식 명칭도, 법에 등재된 등급도 아니지만 시장과 평론이 결국 하나의 언어로 굳혀 온 말. 수퍼 투스칸(Super Tuscan)이다. 그 중심에는 티냐넬로(Tignanello)가 있었다.
직업 덕분에 이탈리아 와인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자연스럽게 강의보다 시음이 먼저였고, 와인 책보다 물류 창고를 먼저 들여다보며 익숙해질 기회가 많았다. 그 안에서 수퍼 투스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한 번에 와닿지 않았지만, 묘하게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탈리아 와인을 매일 들여다보는 자리에서도 이 단어만큼은 결이 달랐다. 장르 안에 있으면서도 장르를 거부한 무언가처럼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수퍼 투스칸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 이탈리아 와인법 어디에도, 어떤 라벨에도 이 단어는 없다. 이탈리아 와인 평론가들이 자연스럽게 붙이기 시작했고, 시장이 받아들였고, 결국 하나의 카테고리가 됐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의 결단이 있었다.
말바시아, 트레비아노 같은 청포도들을 섞으면 산지오베제의 강한 산도와 수축감이 완화되고, 향과 질감이 더 가벼워져 와인이 부드러워진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신, 산지오베제 특유의 농도감과 구조감이 희석되고 향의 집중도와 복합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오래된 관행과 뒤엉킨 기득권이 그 규정을 지탱했다. 맛은 희석됐고, 이탈리아 와인은 국제 무대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600년 이상 와인을 만들어 온 명가의 26대손, 피에로 안티노리는 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1968년, 그는 보르도에서 권위를 인정받던 프랑스의 저명한 와인 전문가 에밀 페노에게 자문을 구했다. 페노는 ‘에놀로지스트’, 즉 포도를 수확한 뒤 발효, 숙성, 블렌딩, 품질 관리를 과학적으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양조학 전문가로 불린 인물이었다.
그의 권고는 명확했다. 수확량을 낮추고, 키안티에 화이트 품종을 섞는 관행을 멈추고, 새 오크통으로 숙성과 질감을 정교하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방향은 그렇게 정해졌다. 그리고 그 방향을 실제 와인으로 구현해 내며 실행과 검증을 맡은 사람이 당시 안티노리 셀러의 핵심 인물이던 자코모 타키스였다. 결단은 안티노리가 이끌었고, 실행과 검증은 타키스가 맡았다.
와인 평론가 루이지 베로넬리가 시음 후 출시를 강하게 권하지 않았다면, 이 와인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피에로 안티노리는 한 인터뷰에서 “티냐넬로는 베로넬리가 ‘No’라고 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티냐넬로의 라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 와인이 어떤 방식으로 태어났는지를 요약한 문장에 가깝다. 한가운데 자리한 ‘태양’은 한 병의 존재를 선언하는 가장 간결한 상징이다. 안티노리 가문의 크레스트(Crest·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 또는 방패형 엠블럼)와 모토 ‘Te Duce Proficio’(당신의 인도를 따라 나는 나아간다)는 이 실험이 전통을 버린 반항이 아니라, 오래된 뿌리 위에서 더 높은 기준을 세우려는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피에로 안티노리는 한 가지를 더했다. 라벨에 아버지 니콜로 안티노리의 서명을 넣은 것이다. 자신의 실험을 믿어준 아버지에 대한 헌사였다. 이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한 ‘승인’이자 ‘계승’의 흔적이다. 말로 길게 설명하기보다, 한 장의 라벨이 “이 와인은 가문 안에서 결심 됐고, 책임까지 함께 짊어졌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공식 등급은 비노 다 타볼라였다. 이탈리아 분류 체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테이블용 와인이었다. 그러나 이 낮은 등급은 품질의 부족이 아니라 선택의 흔적이었다. “규정의 형태에 맞추느라 와인의 중심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시장은 그 태도를 알아봤다. 법이 최하위로 판정한 와인을, 시장은 최상위로 대우했다.
비슷한 시기 토스카나 마렘마 해안에서도 같은 방향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리오 인치자 델라 로케타 후작이 가족과 지인을 위해 만들던 사시카이아(Sassicaia)가 1968년 빈티지를 1971년에 처음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안티노리는 이 와인의 마케팅과 유통을 맡았고, 타키스를 파견해 양조를 함께 다듬었다. 해안에서 먼저 가능성이 증명됐고, 키안티 한복판에서 티냐넬로가 그것을 더 크게 완성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 수퍼 투스칸은 하나의 흐름이 됐다. 법이 최하위로 분류한 와인들이 시장에서 최상위 평가를 받으며 쏟아졌다. 법이 시장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결국 1992년 이탈리아 와인법이 개정됐고, 비토착 품종과 비전통적 블렌딩을 공식으로 인정하는 IGT(Indicazione Geografica Tipica·인디카치오네 제오그라피카 티피카) 등급이 새로 생겼다.
수퍼 투스칸은 허가받지 못한 포도밭에서 시작했다. 혁신의 출발점은 늘 허락받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혁신을 가능하게 한 건, 역설적으로 그 세계를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알아 온 사람들이었다. 전통을 가장 잘 아는 사람만이 전통의 어디를 깨야 하는지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냐넬로와 사시카이아를 마신다는 건 단지 비싼 와인을 경험하는 일이 아니다. 그 잔 안에는 오래된 질문 하나가 함께 들어 있다. 등급이 아니라 정말 맛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수퍼 투스칸은 그 질문에 대해 토스카나가 내놓은 가장 우아하고도 단호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