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탈리아 와인판은 이 한 병이 뒤집었다…'최하위 등급'의 반란 [변원규의 잔 들기 전 이야기]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토스카나를 바꾼 와인 한잔
    티냐넬로와 수퍼투스칸의 탄생
    티냐넬로 1971의 탄생을 담은 피에로 안티노리의 저서 <Tignanello 1971: A Tuscan Story>. 사진=와인나라 본점 아카이브
    티냐넬로 1971의 탄생을 담은 피에로 안티노리의 저서 <Tignanello 1971: A Tuscan Story>. 사진=와인나라 본점 아카이브
    혁신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사후에 붙는다. 처음에는 대개 무모해 보인다. 기존의 규칙을 건드리고, 익숙한 질서를 불편하게 만들고, 당장 이해받지 못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람들은 그 선택을 두고 “시대를 바꿨다”고 말한다. 구찌는 패션의 문법을 다시 썼고, 애플은 전화기의 정의를 바꿨다. 우리가 혁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개 그렇게 온다. 가장 오래, 가장 깊이 그 세계를 이해해 온 사람이 어느 순간 그 규칙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결심하면서 말이다.

    토스카나(Tuscany)의 와인도 그랬다. 그리고 와인의 세계에서 그 결심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 있다. 공식 명칭도, 법에 등재된 등급도 아니지만 시장과 평론이 결국 하나의 언어로 굳혀 온 말. 수퍼 투스칸(Super Tuscan)이다. 그 중심에는 티냐넬로(Tignanello)가 있었다.

    직업 덕분에 이탈리아 와인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자연스럽게 강의보다 시음이 먼저였고, 와인 책보다 물류 창고를 먼저 들여다보며 익숙해질 기회가 많았다. 그 안에서 수퍼 투스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한 번에 와닿지 않았지만, 묘하게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탈리아 와인을 매일 들여다보는 자리에서도 이 단어만큼은 결이 달랐다. 장르 안에 있으면서도 장르를 거부한 무언가처럼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수퍼 투스칸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 이탈리아 와인법 어디에도, 어떤 라벨에도 이 단어는 없다. 이탈리아 와인 평론가들이 자연스럽게 붙이기 시작했고, 시장이 받아들였고, 결국 하나의 카테고리가 됐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의 결단이 있었다.
    안티노리 가문의 이름을 단 마차, 짚으로 감싼 피아스코(Fiasco) 병을 수백 개 쌓아 올린 거대한 구조물은 당시 키안티 와인이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었다. 피에로 안티노리가
    안티노리 가문의 이름을 단 마차, 짚으로 감싼 피아스코(Fiasco) 병을 수백 개 쌓아 올린 거대한 구조물은 당시 키안티 와인이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었다. 피에로 안티노리가 "키안티는 무너지고 있었다"고 회고하기 수십 년 전, 가문은 바로 이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진=와인나라 제공
    1960년대 토스카나의 와인 세계는 ‘정답이 정해진 세계’에 가까웠다. 라벨이 먼저 질서를 만들고, 와인은 그 질서 안에서 움직였다.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Sangiovese)를 기반으로 하는 키안티(Chianti) 와인에는 반드시 청포도를 일정 비율 섞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말바시아, 트레비아노 같은 청포도들을 섞으면 산지오베제의 강한 산도와 수축감이 완화되고, 향과 질감이 더 가벼워져 와인이 부드러워진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신, 산지오베제 특유의 농도감과 구조감이 희석되고 향의 집중도와 복합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오래된 관행과 뒤엉킨 기득권이 그 규정을 지탱했다. 맛은 희석됐고, 이탈리아 와인은 국제 무대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600년 이상 와인을 만들어 온 명가의 26대손, 피에로 안티노리는 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1968년, 그는 보르도에서 권위를 인정받던 프랑스의 저명한 와인 전문가 에밀 페노에게 자문을 구했다. 페노는 ‘에놀로지스트’, 즉 포도를 수확한 뒤 발효, 숙성, 블렌딩, 품질 관리를 과학적으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양조학 전문가로 불린 인물이었다.

    그의 권고는 명확했다. 수확량을 낮추고, 키안티에 화이트 품종을 섞는 관행을 멈추고, 새 오크통으로 숙성과 질감을 정교하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방향은 그렇게 정해졌다. 그리고 그 방향을 실제 와인으로 구현해 내며 실행과 검증을 맡은 사람이 당시 안티노리 셀러의 핵심 인물이던 자코모 타키스였다. 결단은 안티노리가 이끌었고, 실행과 검증은 타키스가 맡았다.
    피에로 안티노리(왼쪽에서 네번째)와 그의 가족들, 현재 피에로 안티노리는 회장직에 물러났으며 그의 뒤를 이어 딸인 알비에라 안티노리(왼쪽 첫번째)가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사진=와인나라 제공
    피에로 안티노리(왼쪽에서 네번째)와 그의 가족들, 현재 피에로 안티노리는 회장직에 물러났으며 그의 뒤를 이어 딸인 알비에라 안티노리(왼쪽 첫번째)가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사진=와인나라 제공
    그런데 이 결단이 쉬운 일이었을까? 가문이 600년 넘게 쌓아 온 방식을 스스로 깨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그 전통을 깊이 알고 지켜 온 사람이, 바로 그 전통이 만든 선을 넘기로 한 것이다. 허가받지 않은 품종을 쓰고, 허가 받지 않은 방식으로 숙성하는 와인. 잘못됐을 때의 중압감이 얼마나 컸을지는 와인이 완성된 뒤에도 안티노리가 출시를 망설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와인 평론가 루이지 베로넬리가 시음 후 출시를 강하게 권하지 않았다면, 이 와인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피에로 안티노리는 한 인터뷰에서 “티냐넬로는 베로넬리가 ‘No’라고 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피에로 안티노리 책에 실린 티냐넬로 1971 빈티지.
    피에로 안티노리 책에 실린 티냐넬로 1971 빈티지.
    1971년 빈티지가 세상에 공개된 건 1974년이었다. 포도밭과 셀러에서 만들어진 해와 세상에 내놓은 해 사이의 3년이란 시간차가 존재한다. 이 시간차는 이 와인이 즉흥적인 반란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검증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티냐넬로라는 이름 자체도 이 와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안티노리는 티냐넬로가 ‘같은 이름을 가진 단일 포도밭’에서만 생산된다고 설명한다. 즉, 브랜드를 새로 지어낸 이름이 아니라, 포도밭의 이름을 그대로 와인에 붙인 경우다.

    티냐넬로의 라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 와인이 어떤 방식으로 태어났는지를 요약한 문장에 가깝다. 한가운데 자리한 ‘태양’은 한 병의 존재를 선언하는 가장 간결한 상징이다. 안티노리 가문의 크레스트(Crest·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 또는 방패형 엠블럼)와 모토 ‘Te Duce Proficio’(당신의 인도를 따라 나는 나아간다)는 이 실험이 전통을 버린 반항이 아니라, 오래된 뿌리 위에서 더 높은 기준을 세우려는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피에로 안티노리는 한 가지를 더했다. 라벨에 아버지 니콜로 안티노리의 서명을 넣은 것이다. 자신의 실험을 믿어준 아버지에 대한 헌사였다. 이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한 ‘승인’이자 ‘계승’의 흔적이다. 말로 길게 설명하기보다, 한 장의 라벨이 “이 와인은 가문 안에서 결심 됐고, 책임까지 함께 짊어졌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공식 등급은 비노 다 타볼라였다. 이탈리아 분류 체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테이블용 와인이었다. 그러나 이 낮은 등급은 품질의 부족이 아니라 선택의 흔적이었다. “규정의 형태에 맞추느라 와인의 중심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시장은 그 태도를 알아봤다. 법이 최하위로 판정한 와인을, 시장은 최상위로 대우했다.

    비슷한 시기 토스카나 마렘마 해안에서도 같은 방향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리오 인치자 델라 로케타 후작이 가족과 지인을 위해 만들던 사시카이아(Sassicaia)가 1968년 빈티지를 1971년에 처음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안티노리는 이 와인의 마케팅과 유통을 맡았고, 타키스를 파견해 양조를 함께 다듬었다. 해안에서 먼저 가능성이 증명됐고, 키안티 한복판에서 티냐넬로가 그것을 더 크게 완성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 수퍼 투스칸은 하나의 흐름이 됐다. 법이 최하위로 분류한 와인들이 시장에서 최상위 평가를 받으며 쏟아졌다. 법이 시장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결국 1992년 이탈리아 와인법이 개정됐고, 비토착 품종과 비전통적 블렌딩을 공식으로 인정하는 IGT(Indicazione Geografica Tipica·인디카치오네 제오그라피카 티피카) 등급이 새로 생겼다.
    메건 마클의 블로그 ’더 티그’, 티냐넬로를 마시며 느낀 순간을 기록했다. 이후 매건은 티냐넬로를 ‘티그(Tig)’라 부르며 티냐넬로의 팬임을 자처했다. 사진=블로그 캡처
    메건 마클의 블로그 ’더 티그’, 티냐넬로를 마시며 느낀 순간을 기록했다. 이후 매건은 티냐넬로를 ‘티그(Tig)’라 부르며 티냐넬로의 팬임을 자처했다. 사진=블로그 캡처
    와인이 단지 술로만 기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미국 드라마 ‘슈츠(Suits)’로 이름을 알린 배우 메건 마클. 현재는 영국 해리 왕자와 결혼해 서식스 공작부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왕실을 떠난 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활동 중인 그녀가 한때 운영하던 라이프스타일 블로그의 이름이 ‘더 티그(The Tig)’였다. 티냐넬로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녀는 블로그 소개 글에 이렇게 썼다. 티냐넬로를 처음 마신 순간 와인 용어들, 즉 바디(무게감), 레그(잔 벽면을 타고 흐르는 와인 자국), 구조(산도, 타닌, 알코올의 균형)가 갑자기 감각으로 이해됐다고. 그 순간을 그녀는 ‘티그 모먼트(Tig Moment)’라고 불렀다.

    수퍼 투스칸은 허가받지 못한 포도밭에서 시작했다. 혁신의 출발점은 늘 허락받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혁신을 가능하게 한 건, 역설적으로 그 세계를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알아 온 사람들이었다. 전통을 가장 잘 아는 사람만이 전통의 어디를 깨야 하는지도 알기 때문이다.
    안티노리 티냐넬로. 사진=아영FBC
    안티노리 티냐넬로. 사진=아영FBC
    티냐넬로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수퍼 투스칸은 더 이상 단순한 고급 와인 카테고리가 아니다. 그것은 “규칙을 어긴 와인”의 역사가 아니라, “기준을 다시 세운 와인”의 역사다. 처음엔 이름도 없었고, 제도도 없었고, 안전한 칸도 없었다. 있었던 것은 한 가지, 불편함이었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없다는 불편함. 그리고 그 불편함을 끝까지 밀어붙여 실제 한 병으로 만들어 낸 결심이었다.

    그래서 티냐넬로와 사시카이아를 마신다는 건 단지 비싼 와인을 경험하는 일이 아니다. 그 잔 안에는 오래된 질문 하나가 함께 들어 있다. 등급이 아니라 정말 맛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수퍼 투스칸은 그 질문에 대해 토스카나가 내놓은 가장 우아하고도 단호한 대답이다.
    1. 1

      '신꾸'족 주목…레고 지비츠로 꾸미는 크록스 나왔다

      글로벌 신발 브랜드 크록스가 레고그룹과 함께한 두 번째 협업 컬렉션을 20일 국내에 공식 출시한다고 밝혔다.이번 컬렉션은 △레고 마스터브랜드 크리에이티비티 클로그(LEGO® Masterbrand Creativ...

    2. 2

      男레더자켓 불티나게 팔리더니…에잇세컨즈, 각잡고 준비했다

      남성복 매출이 눈에 띄게 늘자 에잇세컨즈 등 주요 의류 브랜드들이 관련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캐주얼 브랜드 에잇세컨즈는 성별의 경계를 허문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아이템, 스포티한...

    3. 3

      보라색으로 물든 밤…한강 달군 '제석이형 리스트'

      지난 18일 저녁, 반포 세빛섬의 ‘무드서울’은 짙은 포도 향기로 가득찼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제석형’이라는 친근한 별칭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