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의 의료와 사회] 의료AI 시대, 부상하는 환자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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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환자, AI 덕에 정보격차 크게 줄어
투명한 소통 위에 새 신뢰 관계 구축해야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투명한 소통 위에 새 신뢰 관계 구축해야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변화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AI 앱으로 피부 병변을 촬영하면 즉시 분석 결과가 뜬다. 증상을 입력하면 가능한 진단명과 검사 항목, 치료 옵션까지 알려준다. 이미 많은 환자가 AI와 충분히 대화한 뒤 의사를 찾는다. 이것이 보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기술과 데이터도 ‘비인간 행위자’라고 했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주체라는 뜻이다. 의료 AI는 환자에게 정보를 주고, 의사의 판단을 돕고, 의료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환자, 의사, 알고리즘이 엮인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주목할 것은 이 네트워크 안에서 환자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AI에 도움을 받은 환자는 자기 증상을 해석하며 치료 옵션을 스스로 비교한다. 의사의 판단에 왜냐고 물으며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라고 되묻는다. 의사-환자 관계가 ‘권위에 기댄 순응’에서 ‘함께 결정하는 동반자 관계’로 진화해 왔는데 이제 엄청난 속도가 붙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환자가 묻지 않아서 의사가 굳이 말하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게 된다. 치료 효과가 불분명한 비급여 시술을 권유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수도 있다. 이미 환자들은 왜 이 약을 처방했는지, 왜 이 검사가 필요한지 그 적정성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이 오고 있다. 감춰진 정보 위에 세워진 권위는 사라지겠지만 투명한 소통 위에 새로운 신뢰가 구축될 가능성도 있다.
수술을 하는 의사라고 예외일까. 수술 로봇과 AI 내비게이션이 보편화하면서 ‘손기술’보다 ‘판단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머지않아 AI가 최적 경로를 제안하고 로봇이 정밀한 동작을 수행할 것이다. 외과의사는 ‘절개하는 손’에서 ‘수술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지휘자’로 진화하게 된다. 그럼에도 의사라는 직업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모습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내과의사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환자를 안내하는 믿음직한 동반자로, 외과의사는 첨단 기술과 협업하며 결정적 순간에 판단을 내리는 책임자로 변화할 때 그 권위와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의 독점자’에서 ‘환자와 함께 걷는 파트너’로의 전환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의사만 신뢰를 얻을 것이다.
환자 권력의 부상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라투르의 통찰처럼 진정한 변화는 네트워크 전체가 함께 움직일 때 일어난다. 환자가 건강의 주인이 되고, 의사가 새로운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의료는 비로소 사람을 위한 것이 된다. 의료AI 시대,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두려움 대신 변화를 선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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