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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벽란도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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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벽란도 정신
    ‘쌍화점(雙花店)에 쌍화 사러 가고신대 회회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고려가요 ‘쌍화점’의 시작 부분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에는 다소 파격적인 작품이다. 노골적 남녀상열지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쌍화(만두, 유리세공품이라는 다양한 설이 있다)를 사러 온 손님의 손목을 잡아끄는 회회아비는 무슬림 상인이다. 고려가 성 풍속뿐 아니라 무역에서도 개방적인 국가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를 대표하는 국제 무역항이 예성강 하구에 자리한 벽란도(碧瀾渡)다. 이름 탓에 섬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도(渡)는 나루, 포구를 의미한다. 송나라 사신이 머물던 객관 벽란정에서 유래했다. 수도 개경의 관문 항인 벽란도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 동남아시아, 아라비아(대식국) 상인들로 붐비는 해상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지였다. 벽란도를 찾은 외국 상인이 ‘코리아’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출발점이기도 하다.

    1123년 긴 항해 끝에 벽란도에 도착한 송나라 사신 서긍은 “그 번성함이 실로 놀라워 마치 중원의 대도시와 같다”는 강렬한 첫인상을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남겼다. 300년(1012~1301년)간 기록에 남은 벽란도 방문 송나라 상인은 총 135건, 4976명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그제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양국 기업인 600여 명을 향해 “외교적 긴장과 갈등이 있던 시기에도 고려와 송나라의 벽란도를 통한 교역은 중단되지 않았다”며 “오늘날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지점도 이 벽란도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협력을 통해 몇 년간 연 3000억달러 수준에서 정체된 양국 교역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자는 의미다.

    양국 역사에서도 특히 무역에 진심이었던 고려와 송나라다. 지금의 한국과 중국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던 중국은 이제 모든 주력 산업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무서운 라이벌이 됐다. 미·중 패권전쟁과 공급망 재편 속에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벽란도 정신도 중요하지만 고차원의 대중(對中) 산업 전략부터 세워야 할 때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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