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안성기 비보에…조용필부터 이정재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다. 이날 장례식장이 열리자마자 영화인과 문화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빈소 안팎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국영화배우협회 관계자는 이날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전했다. 그는 "유가족에게서 전해 들은 바로는 병원에 계실 당시 깊이 잠든 것처럼 매우 평온했다고 한다"며 "큰 고통 없이 조용히 영면에 드신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본인이 직접 '용필아 나 다 나았어'라고 말해줘서 안심했었다"며 "다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같은 반에서 옆자리에 앉아 늘 함께 다녔고, 만나면 배우와 가수를 떠나 장난을 주고받던 사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늘에 가서도 아쉬움 없이 하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하시길 바란다. 성기야 또 만나자"고 고인을 배웅했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도 이른 시간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정재는 고인의 아내 요청에 따라 운구를 맡아 마지막 길을 함께할 예정이다.
안성기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다섯 살에 데뷔하며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1959년 출연한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아역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학업에 전념하기 전까지 약 10년간 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성인이 된 그는 '병사와 아가씨들'을 시작으로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해 본격적인 주연 배우로 자리 잡았다. 이후 '만다라',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등을 통해 198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안성기는 약 69년에 걸쳐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의 중심을 지켜왔다. 대종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40여 차례 연기상을 받았고, 은관문화훈장을 비롯한 각종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사회적 책임도 꾸준히 실천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운구는 이병헌, 이정재, 정우성, 박철민 등이 맡고, 조사는 배창호 감독과 정우성이 낭독한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