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엔 꿈쩍 않던 사법부, 이젠 먼저 AI 도입하겠다니 격세지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4차산업혁명위원장 지낸 윤성로 사법부 인공지능위원
2021년 4차산업혁명위원장으로
사법부 찾았을 때와 반응 극과 극
공대출신 판사들, AI도입 의지 커
데이터세트 공개는 '시기상조'
판사 프로파일링·개인 특정 우려
사법부 AI개발예산 턱없이 부족
국가주도 '소버린AI' 활용 검토를
2021년 4차산업혁명위원장으로
사법부 찾았을 때와 반응 극과 극
공대출신 판사들, AI도입 의지 커
데이터세트 공개는 '시기상조'
판사 프로파일링·개인 특정 우려
사법부 AI개발예산 턱없이 부족
국가주도 '소버린AI' 활용 검토를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 참여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법원에 들어가보니 공대 출신 판사들이 기술 이해도가 높고 AI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에 놀랐다”며 “위원장인 이숙연 대법관은 포스텍을 수석 입학한 이공계 출신이어서 기술 트렌드 파악이 빠르고 무엇보다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23년 12월 이후 사법부는 AI 도입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사법부는 지난 4월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했고, 지난달 25일 제3차 회의에서 판결서 공개 정책에 대한 ‘차등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AI 분야 전문가인 윤 교수는 4차산업혁명위원장 시절부터 사법부에 AI 도입을 지속 제안해온 인물이다.
◇“데이터세트 공개는 아직 준비 안 돼”
윤 교수는 사법부가 판결서 공개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를 명확히 했다. 그는 “한국은 투트랙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며 “개별 판결서는 개인이 신청하면 바로 열람 가능하게 하되 거대한 데이터세트 공개는 당장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판사 프로파일링’과 개인 특정 가능성을 핵심 우려로 꼽았다. 윤 교수는 “판결문으로 판결 성향을 분석하는 프로파일링이 가능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재판부가 정해지면 미리 대비할 수도 있다”며 “특히 유명인의 판결서 내용은 개인이 특정되기 쉬운데 개인정보 문제에 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사법부, 소버린 AI 활용 방안도
윤 교수는 사법부 AI 사업의 현실적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사법부가 AI 프로젝트를 3년치 계획으로 집행해야 하는데 절대 규모가 부족하고 집행 유연성이 없다”며 “직원 2만 명이 이용할 서버를 연 40억원 안팎 예산으로 과연 구축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대법원은 7월부터 KT 컨소시엄과 총 145억원 규모의 ‘재판 업무 지원을 위한 AI 플랫폼 구축사업’에 착수했다. 판결문·법령 기반 AI 검색 서비스와 재판 쟁점 자동 추출·요약 기능을 구축한다.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는 예산 제약 극복 방안으로 ‘AI 그랜드 챌린지(기술경연대회)’ 개최를 제안했다. 윤 교수는 “집단지성을 발휘할 기회로 기업과 연구기관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국가 주도의 ‘소버린 AI’가 구축되면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국가대표 AI 5팀이 선정돼 ‘독자 AI’ 개발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판결서, 국방 등 민감한 정보를 해외 클라우드에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사법 AI를 위해서라도 소버린 AI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간에 사법 AI 개발 맡기는 것은 안 돼
민간에 사법 AI 개발을 맡기자는 의견에는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의료 AI도 병원을 빼고는 아무것도 못하듯이 사법 AI도 법원을 빼고는 못한다”며 “사법부 내 수많은 판결 데이터를 AI로 활용하고 결국 판사의 신속한 판결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 법원을 배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리걸테크 업체와 학계 등을 위한 대량 데이터세트 공개는 사법부 데이터센터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윤 교수는 “사법부 데이터센터를 ‘데이터 안심구역+규제 샌드박스’ 방식으로 지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효율적 운영을 위해 법원행정처장을 지정권자로 추가하는 입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5년 후 사법부 AI에 대해서는 “2030년엔 최소한 판사들이 유사 판례 검색 같은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며 “판결문 작성을 완전 자동화하기는 어렵지만 참고자료 제공 단계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판결 자체를 AI가 하는 방식에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AI가 판결하면 법전대로 판결하는 법형식주의가 주를 이뤄 억울한 일이 많아질 수 있다”며 “인간의 따뜻함과 ‘정상 참작’까지 학습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