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빚, 회생 신청하며 재산 허위신고한 수의사…사기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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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실형 선고했으나 대법, 파기환송
"회생절차 특수성 고려해 따져봐야" 판단
회생절차상 사기죄 성립 법리 첫 확립
"회생절차 특수성 고려해 따져봐야" 판단
회생절차상 사기죄 성립 법리 첫 확립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의사 A씨 사건의 원심판결을 지난달 12일 파기하고 대구지방법원에 환송했다.
2004년부터 서울 강남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해 온 A씨는 2014년 9월쯤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면서 수억 원의 빚을 지게 됐다. 그는 2017년 9월쯤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고, 같은 해 10월 개시 결정이 떨어졌다.
A씨는 2018년 2월께 회생절차 담당재판부에 제출한 회생계획안에 월수입을 당시 일하고 있던 경기 안산시 단원구 소재 동물병원 월급만 기재했다. 그는 회생절차 개시 후인 2017년 12월부터 해당 병원에서 월 440만원을 받고 주 4일 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문제는 A씨가 월급 외에 추가 수당을 받은 사실이었다. 그는 2018년 1~7월 아내 명의 계좌로 총 7차례 추가 수당을 지급받았는데, 회생계획안에는 이런 내용을 일부러 담지 않았다.
2018년 2월 회생 계획이 인가되고 같은 해 7월 절차가 종결되면서 A씨는 31명의 채권자로부터 빌린 돈 약 11억7427만원 중 7억3531만원가량을 면제받았다. 채권자 중 한 명인 B씨는 그가 법원을 기망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며 사기죄로 고소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하급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봤다. A씨가 재산 등을 허위로 신고해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회생 계획을 인가받은 것은 사기죄를 구성할 수 있지만, 회생절차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A씨의 허위 신고 내역이 회생 계획 인가 요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점에서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추가 수당을 회생계획안 등에 기재하지 않은 것이 객관적으로 회생계획 인가 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거나 이로 인해 회생계획 인가 결정 여부 및 그 내용이 달라질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행동을 기망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가 추가 수당을 회생계획안에 반영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한 점, 사실대로 알렸다 해도 추가 수당의 성격이나 금액 등을 고려할 때 장래 추정 소득이나 회생 계획의 변제율이 반드시 변경됐으리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A씨의 회생 계획이 이미 채권자들에 대해 가산액 이상을 분배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회생절차에서 사기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A씨의 상고를 받아들였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회생절차에서의 사기죄 성립에 관해 명시적으로 법리를 확립한 첫 사례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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