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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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한 혐의를 받는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자산운용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외국계 IB의 불법 공매도에 대한 기소는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다. 불법 공매도를 근절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정부 기조에 맞춰 검찰이 외국계 IB를 대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잔량 부족’ 알면서도 183억원어치 팔아

15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불법 공매도 수사팀(팀장 김수홍 금융조사1부 부장검사)은 글로벌 투자은행 A법인과 외국계 자산운용사 R법인 및 소속 트레이더 1명을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상 실제 주식을 빌리지 않고 매도 주문을 내는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 공급량을 과도하게 늘려 주가를 떨어뜨리는 등 시장 교란을 일으켜 해외에서도 불법으로 간주하는 나라가 많다. 국내에선 2021년 4월까지 과태료 처분만 이뤄졌지만, 규정이 개정돼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벌금형의 형사처벌이 가능해졌다.

A사는 2021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국내 주식 57만3884주(주문액 약 183억원)를 2만5219회에 걸쳐 무차입 공매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A사 트레이더들은 회사가 보유한 주식 잔량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독립거래단위(AU)를 운영한다는 빌미로 공매도를 장기간 반복했다. AU란 증권사가 회사 내 다른 부서와 독립적인 의사로 거래할 수 있는 조직이다.

A사가 무차입 공매도 행위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트레이더들의 공매도 다음날 국내 주식 보관 금융회사가 “잔량이 부족해 주식 결제가 되지 않는다”고 통지했음에도 A사가 이를 개선하지 않았다고 봤다.

남부지검은 이날 외국계 자산운용사 R사와 소속 포트폴리오 매니저 G씨에 대해서도 SK하이닉스 주식의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과정에서 시세조종성 주문과 무차입 공매도를 한 혐의(사기적 부정거래)로 재판에 넘겼다. G씨는 2019년 10월 SK하이닉스의 미공개 블록딜 매매 조건을 협의하던 중 매도스와프로 주가를 8만900원에서 8만100원까지 떨어뜨렸고, 제안가보다 낮은 가격에 블록딜을 합의한 뒤 해당 주식을 무차입 공매도해 35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외국인 투자자도 韓 법 따라야”

남부지검이 해외 IB를 무차입 공매도로 기소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남부지검 불법 공매도수사팀(팀장 권찬혁 금융조사1부 부장검사)은 올 3월 HSBC 법인과 트레이더 3명을 2021년 8월부터 12월까지 국내 9개 상장사의 주식 32만 주(157억8400만원 상당)를 공매도한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법조계 관계자는 “HSBC는 첫 기소인 만큼 남부지검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안다”며 “공매도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불법 공매도를 계도한다는 의미가 큰 기소”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국내 주식시장은 특히 외국계 기관의 공매도에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개인투자자보다 담보유지비율이 낮고, 주식 상환기간도 길어 공매도 참여가 훨씬 유리한 환경이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관이 공매도를 목적으로 대차 계약을 맺을 때 개인과 동일한 상환기간 제한(최장 90일)을 적용받는 등 제도가 바뀌었다.

남부지검 관계자는 “국내 개인투자자와 달리 외국계 투자금융업자는 제약받지 않아 무차입 공매도를 남발해왔다”며 “주식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투자자에게 손해를 야기한 외국인 투자자도 국내 자본시장법이 적용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