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장관 "주택기금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절대 동의 못해"
“무주택 서민이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한 청약통장을 기본으로 하는 주택도시기금에 적어도 1조원 이상 손실이 예상됩니다. 기금을 건전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주무장관으로서 (기금이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사용되는 일에) 절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사진)은 13일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식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개정안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개정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고, 경공매를 거쳐 나중에 회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구상이다.

박 장관은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사용하는 게 적절하지 않고, 피해자의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주요 문제로 꼽았다. 그는 “‘후회수’라는 표현에 100% 회수가 가능할 것 같은 뉘앙스가 담겨 있지만 ‘조단위’ 손실이 청약통장 가입자 등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며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채권 가격은 경매를 거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현행법으로도 할 수 있는 피해자 지원 방안을 우선 시행하겠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정말 필요한 일은 안정적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경매에 적극 참여해 피해 주택을 낙찰받은 뒤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함으로써 피해자가 장기간 저렴한 비용으로 살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방식의 피해자 구제가 필요한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국민 합의를 거쳐 결정하자는 게 박 장관의 의견이다.

당초 국토부는 이날 민주당 방안의 대안 성격으로 정부 차원에서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날 밤 급작스럽게 발표 일정을 취소했다. 정부가 당장 대안을 내기보다 현행법으로 가능한 일을 우선 추진하는 쪽으로 여당과 협의했다는 게 박 장관의 설명이다. 민주당이 이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면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을 건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엔 “건의한다 안 한다를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저로서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빌라(다세대·연립주택)를 중심으로 ‘역전세’(이전 계약보다 전셋값 하락)가 이어지는 상황과 관련해선 조만간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다음주께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과 묶어서 전세 대책을 발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임대차 2법’은 원상복구하는 게 맞다면서 궁극적으로 장기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전세 제도의 부작용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달 민간 임대주택 확대와 관련된 로드맵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