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민경 기자
사진=신민경 기자
"○○ 회사의 특별 메시지입니다. 현직 트레이더가 직접 안내해 드립니다. 하루 딱 5분만 따라오시면 파란계좌를 붉은계좌로 물들여 드립니다. 오늘이 지나면 기회는 없습니다." (실제 금융사 사칭 사기 문자 내용)

하나투자증권, KB에셋, 미래대신증권, TOSS TOP…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지만 모두 실존하지 않는 금융사다. 최근 문자와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투자자들의 정보 취득 창구가 다양해지면서 증권사나 유명인을 사칭해 주식 투자에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하는 사기 행태가 끊이질 않고 있다.

현행 법상 유일한 선택지가 '사후 대응'뿐이어서 금융당국 고심도 커지는 상황이다. 불법업체가 아닌 제도권에 대한 수사 권한만 있어서다. 결국은 공론화와 증권사의 적극적인 대처로 소비자 인식을 제고하는 게 최선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하나증권은 지난 8일 공지사항에 '하나증권 사칭 투자문자 관련 유의사항 안내' 글을 띄웠다. 최근 자사 사명과 유사한 '하나투자증권'이란 이름으로 투자자 카카오톡과 문자에 "주식투자에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의 허위 광고문자가 발송되고 있으니 주의해 달라는 내용이다.

하나증권은 이를 인지하고 바로 금융감독원에 해당 내용을 신고했다. 회사 관계자는 "피해 방지를 위해 먼저 공지로 유의사항을 알렸고 회사 차원에선 해당 광고에 대해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증권사로 젊은 투자자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토스증권도 최근 사칭 피해를 입었다. 자신들을 '토스증권 임직원'으로 소개한 어느 집단이 온라인 광고를 통해 투자자들을 주식리딩방으로 유인했다. 그리고는 고수익 프로젝트에 참여해 공모주를 청약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취지로 청약대금을 대포통장으로 편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사무소 홍림 관계자는 "사칭 토스 대표와 임직원들이 두 달여간 주식강의를 하는 등 환심을 산 뒤 여기에 넘어온 투자자들에게 토스증권 사칭 가짜 앱 'TOSS TOP'을 설치하게 한다"며 "출금 시 세금 20%를 내라며 추가 이체를 요구하고 그 뒤로는 연락두절 되는 등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으로 신고가 여럿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SNS 광고가 계속되면서 피해자가 계속 유입되고 있어 피해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사진=법률사무소 홍림
사진=법률사무소 홍림
토스는 바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사칭 계정과 리딩방을 정지시키기 위해 수사당국에 신고했다. 토스 측은 "수사기관 고소와 금융당국 신고 등 법적 대응을 통해 피해 사례가 확산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며 "사기신고 계좌의 경우 토스앱 내 송금이 이뤄질 수 없도록 블랙리스트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칭 범죄를 탐지할 수 있는 외부 업체에도 의뢰해 보다 강력히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교묘히 바꾼 사명을 앞세워 불법 리딩방으로 초대한 뒤 바람잡이들을 두고 돈을 가로챈다. 주로 가짜 매매 앱을 창구로 두고 여기에 거액을 넣은 투자자가 출금을 시도하려고 할 때 잠적하는 식이다. 수법만 날로 다양해질 뿐 이처럼금융투자회사와 업계 전문가·인플루언서를 사칭한 사기 범죄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유명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사기 광고에 대응하기 위한 '유명인 사칭 온라인 피싱 범죄 해결을 위한 모임'(유사모)를 만들기도 했다. 모임에는 김미경 강사와 개그우먼 송은이, 개그맨 황현희,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전 대표 등이 포함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접수된 투자리딩방 사기 건수는 1452건으로 피해액은 1266억원에 달한다. 다만 이들 리딩방 사기 범행 대부분이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이뤄지고 대포폰·대포통장을 동원하는 탓에 경찰도 수사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법인 대건은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자사에 접수된 리딩방 피해 건수가 전체 피해 규모의 5%(피해액 약 500억원)임을 감안할 때 지난 6개월간 피해액 합계가 1조원가량이 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유사모'는 온라인 플랫폼의 적극적인 사전·사후 대응을 요구하는 한편, 정부에 사칭 범죄를 일반적인 금융 사기가 아니라 보이스피싱 범죄로 규정해 범죄자들을 강력히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다. 보이스피싱 등 전형적인 금융사기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의거해 은행이 사기 이용 계좌를 즉시 지급정지할 수 있지만, 신종 범죄 격인 리딩방 사기는 이를 적용받지 못한다.

정윤미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대응2팀장은 "금융사기 수법 역시 다양한 양태로 빠르게 바뀌다보니 감독당국 차원에서는 사실상 사전 대응은 쉽지 않다"며 "국무조정실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과 함께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논의 중인 만큼 피해 규모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지난 3월 '유사모' 발족을 즈음해 언론과 미디어에 온라인 피싱 범죄의 위험성이 알려진 뒤로 피해 접수 건수가 다소 줄었다"며 "당국과 플랫폼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동시에 투자자들도 비제도권에 대한 경계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