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크 포크스는 미국 블룸버그 탐사전문 기자다. 암호화폐의 의심스러운 실체를 파헤치던 그는 동남아시아로 향했다. 처음 찾은 곳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환전소 거리였다.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이 환전소들은 ‘테더’ 같은 스테이블코인(가격이 달러에 고정된 코인)을 달러로 바꿔줬다. 신분증도 이름도 묻지 않았다. 어떻게 얻은 코인인지도 상관하지 않았다.두 번째 찾은 곳은 교외의 작은 마을이었다.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렸다. 중국 갱단이 사람들을 가둬놓고 코인 사기를 벌이는 곳이다. 갱단은 합법적으로 보이는 구인 광고를 냈다. 구직자들은 고객 서비스 직원이나 영업 사원으로 일하며 돈을 괜찮게 벌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도착한 순간 그들은 감금된 채 사기에 가담해야 했다.그들은 온라인에서 호감을 발하는 외모를 내세웠다.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코인 투자를 종용했다. 스팸 문자를 보내는 일도 했다. 주로 선진국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맞거나 굶었다. 때로는 살해당했다.포크스가 찾은 차이나타운은 으스스했다. 검은 옷을 입은 경비원이 보초를 섰다. 건물 발코니에는 용접된 철봉이 달려 마치 새장 같았다. 건물 안에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온라인에 유출된 영상을 통해 가늠해볼 수는 있다. 영상엔 피에 젖은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등장한다. 전기 충격봉을 든 2명의 갱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다가 주저앉더니 가위를 목에 대고 살려달라고 외쳤다.포크스가 쓴 <비이성적 암호화폐>는 암호화폐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본다.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갱단의 인신매매 현장만이 아니다. 암호화폐산업의 앞모습, 최첨단의 화려한 모습마저 사기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FTX 거래소를 세우고 폰지 사기를 벌인 샘 뱅크먼프리드가 대표적이다. 그는 MIT를 졸업한 수재다. 언론에도 자주 나온 유명 인사다.뱅크먼프리드는 한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자 제조사가 있다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들이 파는 상자가 세상을 바꿀 엄청난 물건이라고 홍보한 뒤 상자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공유하는 토큰을 발행한다. “물론 상자 제조사는 그 상자에서 수익금이 생기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정확하게 제시하지 못합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수익금은 생길 겁니다”라고 뱅크먼프리드는 말했다.“모두가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폰지 사기다. 저자는 뱅크먼프리드도 자기가 하는 일이 사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뱅크먼프리드뿐 아니라 암호화폐산업에 관련한 사람 대부분이 사기꾼에 가깝다고 일갈한다.대체불가능토큰(NFT) 열풍도 있었다. 힐튼 가문 상속녀로 유명한 패리스 힐턴이 2022년 광고에 나와 원숭이 NFT를 샀다고 자랑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쓴 원숭이 그림인데 가격이 30만달러(약 4억원)라고 했다. ‘투나잇 쇼’ 진행자 지미 팰런도 같이 광고에 나왔다. 자기도 22만달러에 원숭이 NFT를 하나 샀다고 했다. 광고 후 수많은 유명인이 원숭이 NFT를 샀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그 뒤에 있는 회사는 ‘지루한 원숭이 요트 클럽’이다. 비슷비슷한 원숭이 그림을 NFT로 팔았다. 처음엔 개당 220달러였다. 몇 달 뒤 소더비에서도 거래됐는데, 원숭이 NFT 101점이 2440만달러(약 334억원)에 팔렸다. 지금은 허황된 꿈처럼 그렇게 높은 가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책은 암호화폐를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휩쓴 가장 뜨거운 금융 광기”라고 규정한다. “암호화폐는 게임을 하는 족족 당첨되도록 조작된 거대한 슬롯머신 같았다. 전 세계의 수억 명이 유혹에 굴복하고 암호화폐라는 슬롯머신 손잡이를 당겼다. 모두가 누군가는 그렇게 해서 대박을 터뜨렸다고 알았다. 그렇게 점차 더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를 샀고, 암호화폐 가격은 점점 더 올랐다.”저자는 투자한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을 코인으로 비트코인을 꼽는다. 다른 코인보다 덜 이상하기 때문이다. 또 신봉자들 때문이다. 그들은 종교처럼 비트코인을 받들며, 어떤 증거를 들이대든 ‘비트코인 매수’라고 답한다고 했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경제·경영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5월 첫째 주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가 전하는 현명한 투자법에 관한 책 <어떻게 살 것인가>가 차지했다. 투자와 경영, 인간 본성 등의 측면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23가지를 다룬 <불변의 법칙>이 2위다. 이어 인기 유튜버 흔한남매의 어린이 코믹북 시리즈 신간 <흔한남매 16>이 3위를 기록했다. 자기 계발 베스트셀러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와 <세이노의 가르침>이 각각 4위와 5위에 올랐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기원전 14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400여 년 전. 영원한 권력을 누릴 것 같던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투트모세 4세가 석연치 않게 왕위에 오른 뒤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 무엇보다 당시 서민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제국의 열두 달>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기원전 1550~1069년) 시절을 배경으로 쓰인 팩션(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소설)이다. 고대 이집트를 연구하는 저명한 고고학자인 저자 도널드 P 라이언은 파라오를 비롯한 권력자보다 평범한 이집트 백성들의 삶에 주목했다.저자는 고대 이집트인의 생활 모습을 1년이란 시간에 걸쳐 풀어냈다. 고대 이집트인의 달력은 오늘날 달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나일강 범람을 기준으로 세 시기가 4개월씩 이어졌다. 7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나일강의 범람 시기와 11월 중순에서 3월 중순까지 파종과 재배의 시기, 그리고 3월 중순에서 이듬해 7월 중순까지 연결되는 수확의 시기다. 책의 이야기도 이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글을 몰랐던 당시 민초들의 생활상은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웠다. 농부 바키, 어부 네페르, 옹기장이 로이 등 가상 인물을 접목해 고대 이집트의 생생한 이야기를 완성했다.가상의 인물을 차용했지만 발굴과 연구를 기반으로 그려낸 평범한 백성들의 생활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테베 근처 마을에 사는 농부 바키는 밭이 나일강에 잠긴 동안 노역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부 네페르는 하피 신에게 만선을 기원하며 매일 나일강에 그물을 던진다. 궁전의 의사 네페르호테프는 병석에 누운 파라오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미라 제작 장인 마후는 완벽한 미라 제작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군인, 방직공, 서기관, 사제 등 다양한 고대 이집트인의 흥미로운 일상이 펼쳐진다.수천 년 전 이집트인의 생활사를 다룬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매일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모이면 시대의 역사가 되는구나’. 역사의 큰 줄기 아래 미미해 보이는 오늘의 일상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게 된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