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사상 네 번째로 1400원을 터치하는 등 원화 가치 추락이 심상찮다. 외환당국이 이틀 연속 구두개입하고, 한·일 경제 수장이 최초로 공동 대응에 나섰을 정도다. 그 덕분에 원·달러 환율은 1380원대로 내렸지만 정부 개입이 없으면 1450원 지키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원화의 가파른 추락과 변동성 확대는 갈 길 바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때마침 고공비행 중인 유가도 상승폭을 키우고 있어 자칫 시계 제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원·달러 환율과 유가가 10%씩 상승하면 국내 기업 원가가 2.82% 상승(한국무역협회)한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통화가치 추락은 원화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 엔화도 34년 만의 최저다. 유로 엔 등 주요국 6개 통화 대비 달러가치(달러인덱스)가 5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글로벌 달러 강세’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그래도 원화 약세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환율은 여러 복합적 요인으로 움직이지만 원화 약세는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 약화를 의미한다. 물론 수출과 펀더멘털이 나쁘지 않고 외환보유액도 나름 쌓여 있어 과도한 비관론은 금물이다. 하지만 높아지는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한국이 특히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한 만반의 대처가 필요하다.

무너지는 환율 균형이 인공지능(AI)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발이라는 점도 주목 대상이다. 미국은 인재·기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글로벌 경제 주도권을 회복한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0.6%포인트나 올린 2.7%로 수정했다. 중국 일본 한국 등 다른 나라는 거의 변동이 없다. 미국의 나 홀로 성장은 원·달러 환율을 더 밀어 올려 우리 통화·재정정책의 손발을 묶을 가능성이 크다. ‘노랜딩’으로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지연되면 우리 금리 인하도 어려워지고 고공비행 중인 기업·가계빚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야당은 물가를 자극하고 펀더멘털을 훼손하는 포퓰리즘으로 돌진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도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13조원, 소상공인 지원금 1조원을 지급하자며 정부를 압박했다. 이러다 정말 천장 뚫린 환율을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