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첫 파업 가능성, 하이닉스가 앞서 보여준 길 [신인규의 이슈레이더]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파업 가능성, 팩트체크부터 해보겠습니다. 정규직만 12만 4천 명이 넘는 삼성전자엔 복수 노조가 있고, 노조에 가입된 직원이 2만7천400명 정도 됩니다. 이번에 이들 노조가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했는데 조합원 가운데 2만 853명이 표결에 참여해 투표 대비 97.5%의 찬성률로 쟁의행위에 돌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은 노조가 아닌 노사협의회와 사측이 임금 협상을 해왔고, 노조도 쟁의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분위기가 다릅니다. 노사협의회에서 나온 임금 5.1% 인상안을 노조가 거부하고, 6.5% 인상에 유급휴가 1일 추가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었는데 이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한 겁니다.

다섯 개 노조 가운데 가전을 담당하는 DX 노조는 투표 참여율이 저조해서 조합 차원에서는 쟁의에 불참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삼성전자 노조 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전국삼성전자노조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쟁의행위가 가결되면 법률상 교섭에 참여한 모든 노조가 함께 쟁의행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사적 쟁의행위를 준비하는 모습인데요.

만약 실제로 노조가 실력행사에 들어가게 되면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첫 대규모 파업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겠습니다. 노조는 오는 17일 화성의 삼성전자 DSR 타워에서 1천명이 모여 준법투쟁을 실시하겠다고 했습니다. 노조가 연차비용을 보상해줄테니 직원들이 연차를 쓰고 한 곳에 모여서 회사에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그동안 쟁의행위까지는 가지 않았던 삼성전자 노조, 왜 이번엔 다를 것이란 이야기가 나올까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삼성에서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노사 간 갈등이 커져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강성 노조가 없었던 삼성전자 사측 역시 노조 대응에 미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내부에서부터 일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삼성전자 노조 측이 사측에 항의방문을 했을 때 충돌이 있었고 노조위원장이 다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내에서 삼성전자 인사팀인 피플팀이 너무하다, 이런 불만과 함께 내부에 응집력이 더 생겼다는 분석이 나오고요. 삼성전자 복수노조 가운데 한 곳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엔 최근 한 주 사이 1,500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새로 가입했습니다.

또 하나는 역시 보상 때문이겠지요. 표면적으로는 임금 인상률 문제가 있지만 노조 측 이야기를 종합하면 경영진과의 신뢰 문제, 그리고 성과급을 둘러싼 불만이 이번에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매년 초 초과이익성과급, OPI를 임직원에 지급해왔습니다. 연봉의 절반에 달하는 정도에 큰 금액인데 이번에 반도체 부문에서는 OPI가 나오지 않아 임직원들 불만이 커졌습니다. OPI는 삼성전자 사업부 별로 경제적 부가가치, EVA라는 지표의 20%를 재원으로 마련하는데 지난해 반도체 부문 적자인 데다가, EVA가 책정되는 방식이 세후 영업이익에서 자본투자비용을 빼는 식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영업이익이 났더라도 회사가 투자 많이 했다면 성과급을 못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있는 겁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노조 이슈가 커지면 생산 효율이나 투자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이 12만명 이상이니까요.지금은 첨단 반도체 투자 경쟁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거든요. TSMC가 미국 투자규모를 기존 대비 62.5% 늘린 250억달러로 증액을 했는데, 노조 이슈가 삼성전자의 자본투자에 앞으로 경쟁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지를 시장에서 살펴봐야겠고요.

또 하나, 삼성전자 내부에서 성과급 지급 방식 등의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지켜볼 만합니다. 영업이익에서 투자비용을 빼는 방식인 EVA가 임직원들에게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도 하거든요. 삼성전자와 같은 불만이 앞서 일어났던 하이닉스는 실제 2021년에 성과급 지급 방식을 EVA 기반에서 영업이익의 10%를 배분하는 식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최태원 회장의 하이닉스 연봉 반납 선언과 이석희 사장의 해명문 발표도 함께였습니다. 갈등 해결에 있어 경영진과 오너의 리더십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SK하이닉스가 먼저 보여준 셈입니다.


신인규기자 ikshi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