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개막 직전까지 은퇴 고민하다 챔피언결정 4차전에 3점포 '쾅'
"농구 인생 마지막 FA…은퇴할 때까지 전성기 소리 듣고 싶어"
우리은행 우승 주역 박혜진 "이런 챔프전, 또 할 수 있을까요"
여자프로농구 2023-2024시즌 '명장면 베스트 5'를 꼽는다면 이 순간이 빠질 수 없다.

지난달 30일 아산 우리은행과 청주 KB의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4차전 경기 종료 1분 39초를 남기고 우리은행 박혜진(33)의 장거리 3점포가 꽂히면서 70-66이 됐고, 그것으로 우리은행의 3승 1패 우승이 매우 유력해졌기 때문이다.

박혜진은 우리은행이 2012-2013시즌부터 6연패를 달성할 때의 주역이었다.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세 번 선정돼 이 부문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약 2년 전부터 부상과 '번 아웃'에 따른 심리적인 부담이 커지면서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은행 역시 2년 전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김단비와 신예 박지현이 팀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박혜진은 어느덧 조연의 역할을 하게 됐다.

우리은행 우승 주역 박혜진 "이런 챔프전, 또 할 수 있을까요"
한때 리그를 '씹어먹었던' 박혜진을 '조연'이라고만 부르기에는 어딘지 모를 부족함이 느껴진다.

최소한 '주연급 조연'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고, 실제로 올해 챔피언결정전에서 가장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린 것도 박혜진이었다.

4일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박혜진은 "우승이라는 것이 바로 다음 날만 돼도 공허함이 느껴지기 마련"이라며 "지금도 며칠 쉬고, 다시 운동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여러 번 우승해본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 우승의 느낌은 예전 우승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그는 "(김)단비 언니가 오고, (박)지현이도 팀의 중심으로 커야 하는 선수다 보니 제가 욕심을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하지만 막상 코트에 들어서면 저도 해오던 것이 있어서 욕심도 생기고, 속상할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박혜진은 "시즌 도중 무릎 부상 이후에 몸 상태가 금방 올라오지 않아서 사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는 작은 역할이라도 좋으니 그거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며 "이렇게 마지막에 저희가 웃고 끝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돌아봤다.

올해 챔피언결정전은 1∼4차전 내내 경기 끝나기 직전까지 승패를 알기 어려운 접전이었고, 특히 전문가들의 'KB 우승' 예상을 우리은행이 뒤엎은 명승부였다.

박혜진은 "삼성생명과 플레이오프 1차전을 패해 충격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약이 된 면이 있다"며 "1차전 4쿼터 초반 10점 차로 뒤지던 경기를 이기면서 KB를 상대로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우승 주역 박혜진 "이런 챔프전, 또 할 수 있을까요"
그는 "항상 기억에 남는 우승은 첫 우승이었던 2012-2013시즌이었는데, 그게 이번 우승으로 바뀌었을 정도"라며 "팬 분들도 재미있는 챔피언결정전이었다고 말씀해주시지만 뛰는 입장에서는 정말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런 챔프전을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다"고 웃어 보였다.

이번 시즌 그는 짧은 헤어 스타일로도 화제가 됐다.

박혜진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고민할 정도로 번 아웃이 왔던 것 같고, 무릎 부상도 겹치면서 아무리 쉬어도 농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며 "정말 계속 쉬기만 하다가 개막 미디어데이 전날 팀에 복귀했는데 진짜 새로운 마음으로 해보자는 각오로 헤어스타일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때 사진 보면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더벅머리를 했나' 싶어서 놀란다"며 "다시 기르려고 해도 너무 큰 일을 저지른 것 같다"고 웃었다.

우리은행 우승 주역 박혜진 "이런 챔프전, 또 할 수 있을까요"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박혜진의 다음 시즌 행보는 리그 전체의 관심사다.

박혜진은 "4년 전에 처음 FA가 됐을 때는 4년 뒤에 은퇴할 줄 알고 (우리은행에서 은퇴할 마음에) 4년 재계약을 했다"고 돌아보며 "그런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또 FA가 되니 제 농구 인생 마지막 FA인 만큼 다른 팀에서도 연락을 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고 '자기 PR'을 살짝 했다.

그러면서도 "감독님, 코치님, 사무국장님이 서운해하실 수도 있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위성우 감독과 박혜진의 사이는 각별하기로 유명하다.

위 감독이 우리은행에 부임한 2012-2013시즌부터 '왕조'를 건설하는데 가장 핵심 멤버가 박혜진이었다.

박혜진은 4년 전 FA 계약 때 일화를 들려줬다.

"FA 협상을 하면서 감독님과 장어덮밥을 먹는데 감독님이 어색해하시면서 '앞으로 (지도 스타일 등에서) 변하겠다'는 말씀도 하셨다"며 "감독님이 예전에 강도 100으로 지도하셨다면, 요즘은 한 30∼40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이 요즘은 어쩌다 한 번 혼내실 때도 힘들어 보이고, 땀도 흘리셔서 건강이 걱정된다"며 "예전엔 혼날 때 쳐다도 못 봤고, 울기 바빴다"고 흐른 세월을 야속해했다.

우리은행 우승 주역 박혜진 "이런 챔프전, 또 할 수 있을까요"
박혜진이 우리은행 장위동 체육관과 함께한 세월도 벌써 16년이 다 됐다.

그가 신인으로 입단할 때만 해도 '만년 꼴찌'였던 우리은행이 리그 6연패 등 '왕조'를 일구는 사이에 체육관 일대 지역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철거와 새 건물 건설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박혜진은 "이 체육관도 재개발되면 저한테 입주권을 줘야 한다"고 농담하며 FA를 앞두고 휴가를 떠나는 마음을 담았다.

남은 선수 생활 목표를 묻자 박혜진은 "제 기량이 전성기에 비해서는 한 단계 내려왔지만, 그래도 여기서 더 내려가지 않고 은퇴할 때까지 경기력을 유지하면서 팬 분들로부터 '박혜진은 끝날 때까지 전성기'라는 소리를 듣는 성실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고 답했다.

박혜진은 "홈에서 우승한 것이 올해가 처음인데, 팬 여러분의 응원에 정말 큰 힘을 받았다"며 "경기장을 꽉 채워주신 사랑을 제 기억에서 잊지 못할 것 같고, 앞으로도 우리 우리은행, 여자농구를 더 많이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인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