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일으켰다?…음모론 난무하는 세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다.

"
황당한 얘기 같지만, 미국인의 3분의 1은 그렇다고 믿는다.

9·11 테러가 부시 행정부의 '내부자 소행'이라고 믿는 비율도 대략 그 정도 된다고 한다.

이들의 이런 주장은 대개 음모론에 기대고 있다.

음모론이란 음모가 실제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음모에 대한 구조화된 믿음을 말한다.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일으켰다?…음모론 난무하는 세계
오바마의 출생 비밀과 9·11 테러 사례에서 보듯,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음모론에 빠져 지낸다.

미국 공공종교연구소가 2021년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약 15%는 "미국의 정부·언론·금융계가 사탄을 숭배하며, 전 세계 아동 성매매 사업을 운영하는 소아성애자 집단에 의해 통제된다"고 믿는다.

미국 회의주의자연구센터가 미국인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서도 음모론의 위력은 무시무시하다.

센터에 따르면 미국인 4명 중 1명이 "미국 정부의 행위는 선출직 공무원이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비밀 비즈니스 및 문화 엘리트 그룹인 딥스테이트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이 밖에도 유대인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가 세계를 암중에 지배한다는 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에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설,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이 뒤통수를 치지 않았다면 독일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 등 다양한 음모론이 시중에 나돈다.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일으켰다?…음모론 난무하는 세계
왜 많은 사람이 아직도 이런 음모론에 빠져드는 걸까.

미국의 과학저술가이자 과학 저널 '스켑틱'의 발행인인 마이클 셔머는 신간 '음모론이란 무엇인가'(원제: Why the Rational Believe the Irrational)에서 세 가지 이유를 든다.

우선, '대리 음모주의'가 있다.

모든 음모론은 그 속에 더 깊은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가령,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거기에 심은 컴퓨터 칩이 우리를 조종할 것이라는 '황당한' 음모가 있는데, 그 음모론의 심연에는 거대 제약 회사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제약회사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임상이나 실험 데이터를 조작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에 그런 거대 제약회사에 대한 두려움과 반감이 음모론의 기저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반대론자들이 대기업을 신뢰하지 않고, 반핵 운동가들이 거대 규제 기관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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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음모론이 진실로 판명되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것이 유리하다는 '건설적 음모주의'도 있다.

특히 건설적 음모주의는 인간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

예컨대, 나뭇가지를 뱀이라고 착각하고 도망쳤던 우리 조상들은 그렇지 않은 조상들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했다.

"충분한 정보가 음모를 가리키거나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이 음모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후회하는 것보다 안전한 것이 낫다는 생각에 그 말을 믿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집단의 사회 구성원에게 충성심을 드러내는 신호로 음모론을 활용하기도 한다는 '부족 음모주의'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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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같은 음모론이 정부 등 국가기관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약화한다고 지적하면서 이성과 합리성에 바탕을 둔 공동체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로운 탐구, 표현의 자유, 특히 출판의 자유는 모든 시민이 이용 가능한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 안정에 필수적이며, 정치인은 음모가 사회를 부패시키지 않고 음모론이 사회를 절대 부패시키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돔 아래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다출판사. 404쪽. 이병철 옮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