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윤리의 최전선
[신간] 변기 속까지 맨손으로 닦는 경지…'살림지옥 해방일지'
▲ 살림지옥 해방일지 =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재현 옮김.
독립해서 홀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집안일이 귀찮다고 느껴봤을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계속 되풀이되니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 같다.

'살림지옥 해방일지'는 이런 관념에 도전한다.

일본의 대형 신문사에서 바쁘게 일하며 늘 뒤죽박죽이고 어수선한 방에서 지내던 저자는 퇴사 후 집안일을 간편하게 마치고, 심지어 즐길 수 있게 된 경험을 소개한다.

그는 집안일이 괴롭고 힘들었던 이유가 폭주하는 욕망 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멋진 옷을 입고 싶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를 키운 결과 입지 않는 옷과 먹다 남은 음식이 넘치게 됐다는 것이다.

소유물이 늘면서 정리 정돈, 청소, 요리는 점점 힘들어지고 가사는 또 하나의 노동이 된 셈이다.

퇴사 후 월급이 끊긴 저자는 냉장고도 도시가스도 없는 좁은 공간으로 이주해 홀로 지내면서 이른바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한다.

집안일은 차차 간소해지고 구석구석 깨끗하게 하는 일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신간] 변기 속까지 맨손으로 닦는 경지…'살림지옥 해방일지'
저자는 직접 터득한 비법을 세세하게 소개한다.

솔을 이용해 변기를 청소하면 변기는 깨끗해지지만, 찜찜한 상태가 된 솔을 한쪽에 두어야 하는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결단을 내린다.

솔을 없애고 변기 속까지 맨손과 걸레로 청소하기로 한 것이다.

저자는 집안일을 "자신을 위한 접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라고 새롭게 규정하고서 살림이 주는 기쁨을 이렇게 고백한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나의 작은 주방을 수도꼭지부터 가스대, 개수대와 벽까지 행주로 죄다 말끔히 닦고 마지막에는 그 행주를 손으로 깨끗이 빨아 베란다에 탁탁 털어 말리는 게 최고의 기쁨인 인생이 시작되었다.

(중략) 이런 만족감에 마치 고명한 수도승과 같은 심경에 이르렀다.

"
21세기북스. 268쪽.
[신간] 변기 속까지 맨손으로 닦는 경지…'살림지옥 해방일지'
▲ 동물 윤리의 최전선 = 이노우에 타이치(井上太一) 지음. 정혜원 옮김.
비판적 동물 연구(Critical Animal Studies, CAS)라고 불리는 새로 대두하는 학제적 접근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CAS는 사회 정의, 정치 분석, 자본주의 시스템 등을 염두에 두고 인간과 인간 외 동물의 관계를 윤리적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고 실천으로 이어가는 데 관심을 둔다.

산업 사회의 동물은 식용, 실험용, 애완용 등으로 활용된다.

책은 동물이 인간과 관계를 맺는 다양한 방식을 살피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참혹한 결과도 소개한다.

극단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생육 환경이나 기상천외한 실험 등 철저하게 타자로 분류된 동물이 인간에 의해 착취당하는 사례를 고발한다.

책은 동물 착취가 인간 사회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수렵은 사냥 능력에 따라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서열을 만들었으며, 가축을 농경에 이용하면서 이룬 생산성 향상은 상층민과 하층민의 구분을 더욱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CAS가 급진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책은 이 이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구상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지구에 존재하는 전 인류의 수백 배에서 수천 배에 달하는 생물을 죽이고 괴롭히고 무시하는 문화를 방치하면, 해방 운동이 지향하는 정의도 평화도 민주주의도 도덕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두번째테제. 436쪽.
[신간] 변기 속까지 맨손으로 닦는 경지…'살림지옥 해방일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