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가문의 전통에 따라 친구를 죽인 16살 고등학생
16살 고등학생 다윈 영. 단짝 친구를 목 졸라 죽인다. 아버지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서다. 살인은 ‘영’ 가문에서 3대째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다. 다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사람을 죽여 살아남았다. 살인이 그들의 생존 법칙이다.

박지리 작가가 2016년 발표한 소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뮤지컬로 각색돼 무대에 올랐다. 작중 사회는 계급에 따라 9개 거주 구역으로 나뉜다. 주인공 다윈 영은 최고위층을 위한 제1구역에 살며 최고 명문 학교 프라임스쿨을 다니는 학생이다. 교육부 장관인 다윈의 아버지 니스 영은 30년 전 죽은 단짝 제이를 위한 추모식을 매년 연다.

다윈은 친구 레오와 함께 제이의 죽음을 파헤치다가 예기치 못하게 영 가문의 비밀과 맞닥뜨린다. 다윈의 할아버지 러너 영은 제9지구 출신으로 60년 전 폭동을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자신을 총알받이로 쓰려는 계략을 알게 된 러너 영은 상관을 목 졸라 죽이고 도망가 제1구역 가족에게 입양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고 러너 영의 비밀이 드러날 위기에 처한다. 니스 영은 아버지의 비밀 알게 된 친구 제이를 목 졸라 죽였다. 30년이 다시 지나고 다윈은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가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레오를 살해한다.
살인자 가문의 전통에 따라 친구를 죽인 16살 고등학생
살인이 유전 혹은 운명처럼 다윈을 따라다닌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해 인류의 역사를 그렸듯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악의 역사를 찾고 되풀이한다.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한 가문은 1구역에서 사는 반면 내전에서 패배하고 ‘쓸모없는’ 사람들은 빈곤한 9구역으로 내쫓긴다. 반군으로 이름을 날렸던 러너 영은 상관을 죽임으로써 1구역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살인이라는 생존 법칙이 아들 니스 영과 손자 다윈 영까지 유전돼 그 비밀을 지켜왔다. 3대가 이어 살인과 거짓으로 살아남은 적자생존의 가문인 셈이다.

극 초반부터 영 가문의 비밀을 암시하는 복선이 촘촘하게 깔려있다. 카세트플레이어, 사진, 후드티를 비롯한 소품들로 관객에게 직접 단서를 제공해 추리해가며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내전 장면에는 무대 위에 장갑차가 등장하고 총성과 불빛이 날카롭게 극장을 채운다. 과감한 연출이 무거운 줄거리에 생동감이 더한다.

8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압축하면서 인물 관계가 급하게 전개된 감이 있지만 다윈의 심리는 섬세하게 그린다. 순수하고 밝았던 모습이 극이 진행되면서 사라지고 다윈은 점점 어둡고 침울해진다. 살인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다윈의 고뇌가 뼈저리게 그려진다. 디스토피아적인 배경과 살인, 배신이라는 테마에 걸맞은 음악이 다윈이 겪는 갈등과 잘 어우러진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연상하게 하는 ‘시험’ 넘버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추모곡이 객석으로 불길한 기운이 전해진다.
살인자 가문의 전통에 따라 친구를 죽인 16살 고등학생
원작의 독특하고 치밀한 설정과 음악이 조화로워 소설과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공상과학과 추리 장르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더욱 몰입해 즐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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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