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간 작업한 60여점 선보여…성곡미술관에서 5월 17일까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다채로운 색상의 선 수천개가 엉켜있지만, 한발짝 뒤로 물러서면 묘하게 입체감 있는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드로잉인 듯 회화인 듯 그 경계에 서 있는 원로 작가 김홍주(79)의 작품을 모은 개인전이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다.

가느다란 선을 쌓아 만든 드로잉과 회화 사이…김홍주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부터 올해까지 김 작가가 그린 드로잉 60여점을 모아 선보인다.

1970년대 거울이나 자화상 등 섬세한 그림들이 최근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추상적이면서도 생동감 있는 형태로 바뀌는 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종이나 천 위에 연필이나 볼펜, 아크릴 물감 등을 수없이 덧대 만든 작품인 만큼 질감이 도드라진다.

폭 3m의 캔버스천에 그린 누드화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안에 수없이 많은 선이 엉켜있고, 한지 위에 얹은 드로잉도 여러 가지 색깔이 섞여 무어라 단정할 수 없는 색감을 낸다.

일부 작품에는 예리한 핀으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구멍을 내서 독특한 질감을 살렸고, 채색하는 과정에서 물감이 흐르는 모양도 자연스럽게 남겼다.

김 작가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친구가 '선생님 그림은 옆에서 보는 게 더 재미있다'라고도 했다"며 "내 그림은 좌우, 위아래에서 보이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들에는 시간도 켜켜이 쌓여있다.

작가는 드로잉을 그려두었다가 한참 뒤에 선이나 색을 더하기도 하고, 일부는 비워두는 식으로 완성과 미완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렸다.

전시작 가운데는 1970년대 테두리만 찍어두고 약 40년이 지난 뒤 2010년대 들어 그 안에 그림을 그린 작품도 있다.

가느다란 선을 쌓아 만든 드로잉과 회화 사이…김홍주 개인전
성곡미술관은 과감하게 액자를 빼고 드로잉을 날 것 그대로 전시했다.

이 때문에 빛바랜 종이와 느슨하게 고정된 캔버스 천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신선한 감상을 준다.

액자와 유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김 작가의 섬세한 드로잉을 좀 더 잘 보여주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그림이 액자에 들어가면 스크린이 되는데, 이 서양식 스크린이라는 것을 없애버리려고 했다"며 "그저 벽에 직접 그린 것처럼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5월 19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