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입센, 체호프 등 대문호들의 고전 희곡이 올해 줄줄이 무대에 오른다. 단순히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현대의 한국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들이 돋보인다. 창극으로 각색해 우리의 전통 음악을 더하는가 하면, 배경을 한국으로 바꾸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판소리로 노래하는 창극 '리어'

판소리 셰익스피어·전도연판 체호프…고전 희곡 '한국판' 쏟아진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우리 민족의 ‘한’을 담긴다. 국립창극단의 '리어'가 오는 29일 공연한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창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2022년 초연 무대에 오른 후 2년 만에 돌아온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 중 가장 처절하다고 평가받는 걸작이다. 고대 영국의 왕 리어가 자신의 영토를 세 딸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다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를 기준으로 땅을 나누겠다는 조건을 건다. 리어는 아부하는 첫째와 둘째 딸에게 모든 권력을 넘기지만 배신당하고 미쳐버리고 만다. 인간의 욕망을 어리석음으로 파멸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400년이 넘은 비극을 우리의 소리로 표현한다. 정극과 마당놀이, 음악극 등 다양한 장르를 다뤄온 배삼식 극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국립창극단 정영두가 연출과 안무,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정재일 음악감독이 작곡에 참여했다. 과거 배우 이순재를 비롯한 원로 배우들이 도맡았던 늙은 왕 리어를 32세의 배우 김준수가 연기한 점이 주목된다. 오는 3월 29일부터 4월 7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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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축소판을 담은 입센의 희곡 '욘'

판소리 셰익스피어·전도연판 체호프…고전 희곡 '한국판' 쏟아진다
서울시극단은 올해 첫 작품으로 헨리크 입센의 ‘욘’으로 관객과 만난다. 노르웨이 극작가인 입센은 현대극의 선구자로 불린다. 특히 1879년 발표한 사실주의 연극 ‘인형의 집’으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고, 여성 해방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896년 발표한 '욘'은 입센이 생전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젊은 시절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감옥에 가면서 모든 것을 잃고 자기 집 2층에서 틀어박혀 지내는 남자 '욘'의 이야기다. 주인공 욘과 그의 아들 엘하르트를 둘러싼 인물들의 각기 다른 집착과 욕망이 뒤섞이고 갈등하고, 엘하르트는 자유를 찾아 떠난다. 입센의 과거 작품에서도 반복해서 제시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메시지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판소리 셰익스피어·전도연판 체호프…고전 희곡 '한국판' 쏟아진다
각색을 맡은 고선웅 연출은 "오늘날 우리들의 인생의 축소판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입센이 130년 전 던졌던 메시지가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어 "최대한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것이 목표"라면서 "원작에서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가감히 걷어내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각색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오는 29일부터 4월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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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배경으로 재탄생하는 '벚꽃동산'

판소리 셰익스피어·전도연판 체호프…고전 희곡 '한국판' 쏟아진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는 입센과 함께 현대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극작가다. 40대에 요절해 많은 희곡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등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후대 문학가에게 영향을 줬다. 사실주의 희곡으로 불리는 그의 작품들은 인간 생활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동시에 등장인물의 행위와 생각을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특징이다

'벚꽃 동산'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 귀족 가문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추억이 담긴 벚꽃 동산을 경매에 넘겨야 할 상황에 부닥친다. 이 가족이 몰락하는 과정을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현실을 외면하거나 받아들인다. 격변하는 러시아 사회 속에서 흔들리는 가치관을 그리는 작품으로, 체호프의 희곡 중 가장 원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세기 러시아의 귀족 가문 이야기가 한국을 배경으로 재탄생한다. 연극 ‘메디아’, ‘예르마’, ‘입센 하우스’ 등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품을 선보인 사이먼 스톤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희극이면서도 비극인 ‘벚꽃동산’은 한국 배우들의 재능을 보여주면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한국 사회를 담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배우 전도연의 27년 만에 연극 무대 복귀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상대역으로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수리남', 그리고 연극 '파우스트'에서 연기한 박해수가 발탁됐다. 전도연과 박해수는 각각 원작의 여주인공 ‘류바’와 냉철한 상인 ‘로파힌’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인물을 연기한다. 공연은 오는 6월4일부터 7월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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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