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기업이 하청업체 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과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지를 두고 다투는 HD현대중공업과 전국금속노조 간 소송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받는다. 법원 판단에 따라 원청과 하청 근로자의 교섭 방식과 관행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만큼 대법관 4명이 만장일치로 판단하는 소부가 아니라 전원합의체 판단을 받도록 한 것으로 해석된다. 상고장이 접수된 지 약 5년3개월 만이다.

1·2심 회사 승소에도 전원합의에서 결론

현대중공업 '원·하청 교섭' 대법 전합이 결론낸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대법원은 금속노조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청구 소’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이관했다. 전원합의체는 사회적 파급력이 크거나 종전 판례를 변경해야 할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 12명이 표결로 판단하는 곳이다. 각 대법관의 성향이 선고 결과에 반영되는 만큼 하급심 판단을 뒤집는 사례가 적지 않다. 1, 2심 모두 회사 측이 이긴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넘어가자 관련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측은 “심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현재 언급할만한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중공업 하청 노조는 “HD현대중공업이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으므로 교섭 의무가 있다”며 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이에 노조는 2018년 4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 법원은 모두 회사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최근 들어 쟁점이 비슷한 다른 사건에서 회사가 패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작년 1월 “CJ대한통운이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로 이뤄진 전국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원청에 대한 하청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법원이 인정한 첫 사례였고, 2심 역시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오는 21일 열리는 전원합의체 심리에서 HD현대중공업 사건을 다룬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HD현대중공업 사건의 결론은 해당 쟁점에 대한 첫 번째 대법원 판례로 의미가 크다”며 “향후 쟁점이 비슷한 CJ대한통운 사건과 병합 심사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노란봉투법 2조와 쟁점 비슷

상고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 2조의 도입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란봉투법 2조는 사용자 개념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하청 근로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할 권리를 인정하는 셈이다.

전원합의체가 노조 손을 들어줄 경우 원청은 2·3차 하청에 속한 노조와 일일이 교섭해야 하고, 하청 노조가 원청 사업장에서 파업 등 쟁의 행위를 벌이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다. 당장 하청 노조와 분쟁 중인 롯데글로벌로지스, 현대제철 등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사건의 결론은 국내 단체교섭 관행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노사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경영계는 다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중도·보수 과반 구도로 바뀐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최근 엄상필·신숙희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전원합의체의 중도·보수 대 진보 비율은 기존 ‘7 대 6’에서 ‘8 대 5’로 재편됐다. 여기에 올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이 추가로 퇴임을 앞두고 있다.

민경진/곽용희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