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자기 덫에 빠진 韓 빅테크
중국은 쇼핑앱의 천국이다. 위챗, 알리페이 등 간편결제가 연결된 휴대폰만 있으면 모든 것을 주문할 수 있다. 14억 명의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진화한 쇼핑앱의 편의성과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배달라이더의 조합은 이른 새벽에 못 하나를 주문해도 30분 만에 무료 배송해주는 ‘고품질 서비스’를 탄생시켰다.

중국 쇼핑앱의 가장 놀라운 점은 소비자 만족을 최상위 가치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소고기 뭇국을 만들 생각으로 알리바바의 신선식품 배달앱 ‘허마’에서 소고기 양지 500g을 주문했다. 30분 뒤 도착한 양지 상태가 기대 이하였다. 앱에서 ‘환불’ 버튼을 누르고 ‘신선하지 않다’고 간단한 이유를 작성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 몇 초 만에 전액 환불됐다. 허마뿐만 아니라 징둥닷컴, 타오바오 등 중국 주요 쇼핑앱의 환불 정책은 철저한 소비자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소비자 우선'인 쇼핑앱 천국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한국 시장 공습으로 국내 업체들이 비상 상황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중국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은 국내 주요 빅테크와 견줘도 한 단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은 가성비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류 체계를 고도화한 중국 쇼핑앱은 소비자 중심 서비스와 함께 한국 시장에 상륙할 것이다.

게다가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가 국내 업체를 밀어내고 국내 시장을 장악해도 국내 정책 당국은 이를 방어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현행 경쟁법 체계에서는 소비자가 이득을 본 행위에 대한 반독점법 적용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국내 플랫폼 업체들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등 플랫폼 규제에 반대한 논리도 소비자 후생 증대였다. 온플법을 거부했던 국내 빅테크의 방패 논리가 알리익스프레스의 조용한 한국 점령을 가능하게 한 창이 된 셈이다.

中 넘어서려면 먼저 알아야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의 국내 시장 지배력 확대는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쇼핑앱을 통한 소비자 경험이 쌓이면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믹서기, 청소기 등 대부분 생활용품은 품질면에서 중국산이 한국산을 추월한 지 오래라는 평가가 많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국내 상륙을 단순히 가성비 제품을 찾는 소비 트렌드의 변화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국내 온라인 플랫폼이 아마존, 알리바바를 뛰어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정부도 골목상권 침해나 돈벌이 문제로 국한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국내 빅테크의 글로벌 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론 국내외를 막론하고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확대 행위에 대한 적절한 국가 통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국내 빅테크는 당근이 필요한 시점에 채찍을 든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에 시장을 내준 것은 국내 쇼핑 업체들이 자초한 일이다. 극중(克中)을 위해선 지중(知中)이 먼저라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