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말고 새벽 6시 출근하라고 했더니…'깜짝 반전'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일본 여대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직장은 어디일까.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가 2023년 졸업 예정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일본 3대 종합상사인 이토추상사가 2년 연속 여대생이 선호하는 직장 1위에 올랐다. 이토추상사는 남자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장에서도 1위에 오르며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야근 말고 새벽 6시 출근하라고 했더니…'깜짝 반전'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미쓰비시상사와 미쓰이물산 등 경쟁사들은 매출의 60%가 자원사업에서 나온다. 이토추상사는 매출의 80%가 생활·소비용품이다. 데상트 등 다수의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고 편의점 프랜차이즈 패밀리마트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여대생이 이토추상사를 선호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이토추상사가 종합상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종합상사는 일본 고도성장기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들이 전세계를 누비며 '메이드 인 재팬' 상품을 팔았다.
야근 말고 새벽 6시 출근하라고 했더니…'깜짝 반전'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최고 수준의 처우를 자랑했지만 24시간 사무실 등이 꺼지지 않는 노동 강도 또한 악명 높았다.꼭두새벽에 출근해서 별 보며 퇴근해선 밤 새 마시고, 다시 다음날 새벽 출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슈퍼맨, 원더우먼의 직장.

이런 회사의 직원들이 아이를 많이 낳을 리 없다. 이토추상사의 2013년 사내 합계특수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0.6명으로 일본 평균(1.41명)을 한참 밑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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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2년 이토추의 출산율이 1.97명으로 9년 만에 세 배 뛰어오른 반전이 일어난다. 같은 해 일본 전체 평균은 1.3명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자는 지난해 7월 '이토추의 기적'을 한국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경제신문 칼럼을 통해 소개했다. 이 인연으로 일본외신기자센터(FPCJ)의 지원을 받아 최근 기적의 현장을 직접 취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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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추상사는 취재를 위해 아침 7시에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직원들이 가장 많이 출근하는 시간대여서다. 아침 6시30분~8시 회사 입구를 들어선 직원들은 아침 식사거리를 챙긴다. 자회사인 패밀리마트의 인기 메뉴들이다. 매일 바뀌는 100여종의 메뉴를 1인당 3개까지 무료로 고를 수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사내식당에서 아침을 제공하는 한국에 비해 대단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고바야시 후미히코 이토추상사 최고행정책임자(CAO·부사장)는 "다른 종합상사를 비롯해 일본 기업 가운데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야근 말고 새벽 6시 출근하라고 했더니…'깜짝 반전'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아침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유는 이른 출근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이토추는 왜 직원들을 아침 일찍 출근시키려 할까. 그것은 '이토추의 기적'이 아침형 근무제도와 '110 운동'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야근 말고 새벽 6시 출근하라고 했더니…'깜짝 반전'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아침형 근무제란 오후 8시 이후의 잔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대신 오전 5~8시 근무를 심야근무로 취급해 야근 수당(할증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일본법에 따르면 기업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의 근무에 대해 잔업수당을 할증 지급해야 한다.

이토추는 2013년부터 아침 5~8시 근무에 대해 잔업수당을 할증해서 지급했다. 한마디로 야근과 같은 수당을 줄테니 야근을 하지 말고 새벽에 일하라는 것이다. 이토추는 왜 새벽 근무를 권장하는 걸까. 일본 저출산 극복의 현장을 가다②로 이어집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