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휴가도 참 치열하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촉각을 곤두세운다. 떠나기 전 예습한 대로 업그레이드 혜택을 챙기고, 더 좋은 뷰를 배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늦잠을 포기하고 조식 뷔페로 향하지만,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앞에 피로가 밀려온다. 휴식이라기보다 또 다른 전쟁이나 다름 없다.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인피니티풀.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인피니티풀.
편안한 분위기와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하는 객실.
편안한 분위기와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하는 객실.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는 그 모든 치열함으로부터의 해방을 선물하는 곳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넉넉한 면적이다. 서귀포 바다의 범섬을 마주 보는 해안 절벽 위, 2만6830㎡(8100여 평)의 드넓은 부지에 객실은 불과 197개. 덕분에 리조트 내 어느 곳에 있든 붐빈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기본 객실도 평균 45㎡ 면적으로 일반 호텔보다 여유 있게 설계되었다.

객실에는 성인 2명이 함께 들어가도 넉넉한 크기의 대리석 욕조가 바다를 향해 설치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여유를 완성하는 것은 손님 맞춤 서비스다. 체크인 역시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손님에게 찾아오는 ‘시팅 체크인’으로 진행한다.

디자인의 디테일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리조트에서의 스테이가 더욱 즐거울 것이다. 곳곳에 제주의 공기를 담은 요소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 이를테면 객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설치되어 있는 날치 조형물이 그렇다. 힘차게 물을 차고 날아오르는 듯한 날치는 제주 바다의 역동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디테일은 세계적인 럭셔리 호텔 전문 디자이너 빌 벤슬리의 손끝에서 나왔다. 그는 JW 메리어트 제주를 통해 한국에서 첫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그는 호텔이 위치한 지역의 특성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호텔 안에 풀어놓는 디자이너. JW 메리어트 제주 전체에 그의 참신함이 녹아들어 있다. 리조트 전반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테마 컬러, 노란색이 대표적이다.

그가 제주를 방문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은 유채꽃밭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한국의 전통색을 공부하며 노란색이 행운을 상징한다는 점도 의미를 더했다. 이와 더불어 화산섬이라는 제주의 특성을 반영해 회색과 검은색, 흰색을 조화롭게 사용했다. 리조트 곳곳에서는 한국 전통문화와 제주에서 모티브를 딴 장식을 만날 수 있다. 리조트 입구에서 가장 먼저 투숙객을 맞이하는 한복을 입은 여인상, 정원에 설치된 물허벅상과 항아리 등이다. 객실에는 해녀들의 가방인 ‘테왁’이 비치되어 머무르는 동안 사용할 수 있다.
리조트 곳곳에 한국 전통문화와 제주에서 모티브를 딴 장식이 눈에 띈다.
리조트 곳곳에 한국 전통문화와 제주에서 모티브를 딴 장식이 눈에 띈다.

제주 미식의 처음과 끝

시그니처 컬러 노랑이 감싸고 있는 레스토랑.
시그니처 컬러 노랑이 감싸고 있는 레스토랑.
이곳에서 머무른다면 굳이 맛집을 찾아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없다. 제주 미식의 A부터 Z까지 이곳에서 맛볼 수 있으니까. 라운지 카페에서 판매하는 특제 음료가 대표적이다. 우도피넛크림라테는 우도 땅콩 크러스트와 수제 캐러멜, 제주 농장 우유가 들어가 고소하고, 한라봉크림라테에는 수제 한라봉 퓨레를 넣어 상큼하다. 두 음료에 들어가는 커피는 제주시 한경면의 하소로커피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 개발했다. 애프터눈 티 세트에도 가파도 청보리 마들렌, 구좌 당근 호두케이크, 서귀포 감귤 크림 등 제주의 ‘터치’로 가득하다.

미식의 진수는 파인다이닝 더 플라잉 호그에서 펼쳐진다. 우드파이어 그릴 레스토랑을 콘셉트로 하는 이곳에서는 모든 음식을 직화로 조리한다. 센 불로 단숨에 익혀내는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조리 과정을 거쳐 원재료의 감칠맛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오픈 키친에서 야생적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눈을 즐겁게 만든다.

코스를 맛보다 보면 제주의 식재료는 물론 식문화까지 경험하게 된다. 코스의 첫 음식인 아뮤즈 부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도 땅콩, 서귀포의 새우와 귤, 한림의 육회, 애월의 닭이 한 접시에 제공된다. 잼 대신으로는 직화에 구운 귤을 내놓는다. 제주 사람들이 겨울철 몸을 데우기 위해 장작불에 귤을 익혀 먹는 문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레스토랑은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해 채소는 뿌리부터 잎까지, 육류는 살코기는 물론 뼈까지 소스로 살뜰히 활용한다.

샴페인으로 시작하는 느긋한 하루

호사의 절정은 아일랜드 키친에서 누릴 수 있다. 보통 호텔에서는 조식을 오전 10시까지 제공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에서는 개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레스토랑 ‘제주 브런치 로얄’에서는 브런치라는 이름으로 오후 2시30분까지 레스토랑 문을 활짝 열어둔다. 마음껏 늦잠을 자고 일어나도, 체크아웃을 마친 뒤에도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자리에 앉으면 크루아상이 담긴 따끈한 브레드 바스켓과 차갑게 칠링한 샴페인이 제공된다. 곁들인 음식은 최고급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프루니에 캐비어. 보글보글 올라오는 샴페인의 기포를 즐기다 보면 제주의 신선한 계절 식재료를 사용한 솥밥, 양식 브런치 메뉴 등 알 라 카르테(단품 메뉴)가 자리로 제공된다. 스테이크와 랍스터 테일, 장어솥밥과 갈치구이 등 웬만한 레스토랑의 메인 메뉴 부럽지 않다. 샴페인부터 캐비어, 메인 디시까지 모두 원하는 만큼 양껏 제공된다.
브런치에 제공되는 프루니에 캐비어.
브런치에 제공되는 프루니에 캐비어.

마음을 챙기는 시간

야외에서 진행되는 산책·명상 프로그램.
야외에서 진행되는 산책·명상 프로그램.
이제는 마음에게도 휴식을 선사할 시간. 이색적인 기획으로 가득한 ‘마음챙김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자. 제주의 바다와 바람을 느끼며 즐기는 빈야사 요가, 노을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며 몸을 푸는 선셋 비어 요가, 조깅과 명상으로 심신을 가볍게 하는 마인드풀 러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돕는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민화로 남겨보는 드로잉 클래스, 맥주나 와인을 곁들이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시간 등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어린이를 위한 키즈 공간.
어린이를 위한 키즈 공간.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제주의 숲을 탐험해보는 모험 프로그램,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제주 바당 놀이’ 제주 특산물을 활용한 쿠킹 클래스 등이 진행된다. 제주의 청정 자연에서 마음껏 숨을 들이마시고,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시간은 이곳에서의 머무름을 더욱 특별한 추억으로 남겨줄 것이다.

예술적인, 예술에 의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곳만큼 어울리는 곳도 없다. 호텔 곳곳에 알렉산더 칼더, 데미언 허스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무심한 듯 놓여 있다. 미술관에서도 안전선으로 엄격한 호위(?)를 받는 초고가의 작품이건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작품 해설을 들려주는 도슨트 투어도 운영할 예정이니, 호텔 안에서 미니 예술 투어를 즐겨봐도 좋겠다.
존 커린의 ‘St. Glenda’.
존 커린의 ‘St. Glenda’.

리조트 가는 길

리조트 가는 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줄 제주의 주목할 만한 스폿들
법환포구에서 바라보이는 범섬.
법환포구에서 바라보이는 범섬.
법환포구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유명 해수욕장 대신 손때(?)가 덜 묻은 조용한 바다를 찾는다면 법환포구로 가보자. 관광지 대신 어업에 매진하는 도민들의 생활터전이다. 좀녀(해녀를 이르는 제주 방언)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으로, 법환해녀학교에서 바다에서 직접 물질을 할 수 있는 해녀체험, 해녀에게 해녀들의 문화와 역사를 듣는 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도 있다. 제주올레길 7코스로 리조트와도 이어진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섶섬, 문섬, 범섬뿐 아니라 삼매봉과 새연교, 새섬까지 제주 남쪽 바다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샛노란 유채꽃과 푸른 바다의 대비가 어우러지는 풍경도 만날 수 있다.
법환포구의 어선들.
법환포구의 어선들.
서귀포시 법환동


아라리오뮤지엄

제주시 구도심의 역사를 간직한 오랜 건축물이 현대미술과 만났다. 아라리오 재단은 제주시 탑동과 동문의 건물 세 곳을 뮤지엄으로 재탄생시켰다. 기존 건물을 부분적으로 보존하면서 8m가 넘는 대규모의 전시공간부터 구석의 작은 공간까지 활용하여 다양한 시대적·사회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국내외 현대미술품들을 소개한다. 데미언 허스트, 고헤이 나와, 백남준, 앤디 워홀, 안젤름 키퍼 등 아라리오뮤지엄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상설전과 기획전을 병행한다. 현재는 한국 여성주의 사진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박영숙의 개인전 <마녀의 귀환>, 비운의 천재 조각가라고 평가받는 구본주의 개인전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이 과장의 이야기 – 아빠 왔다>가 열리고 있다.
아라리오뮤지엄의 소장품들.
아라리오뮤지엄의 소장품들.
제주시 산지로 23


노형수퍼마켙

흑백의 단조로운 빌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총천연색 별세계가 펼쳐진다. 노형수퍼마켙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갤러리다. 약 4000㎡(1200평) 넓이, 최고 20m 높이의 벽에 쏘아진 형형색색의 영상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웅장한 사운드가 마치 놀이공원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노형수퍼마켙 프리쇼’ ‘베롱베롱’ ‘뭉테구름’ ‘와랑와랑’ ‘곱을락’ 등 5개 테마로 구성된 공간을 탐험하면서 관람객만의 정체성과 색채를 발견할 수 있는 여정을 선사한다.
노형수퍼마켙의 미디어 작품.
노형수퍼마켙의 미디어 작품.
제주시 노형로 89


저지문화지구

야생화 전문 전시관 방림원, 화가 박서보의 집,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 갤러리와 예술 스폿들이 모여 있는 예술마을. 주민들 역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로, 이곳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10월마다 ‘ART&저지’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오는 5월에는 박서보 화백의 작품 전시공간인 저지아트 파빌리온 문을 열 예정이다. 문화지구라는 이름답게 거리에 조각과 설치 작품이 군데군데 숨어 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산책에 나서보자.
야생화 전문 전시관 방림원.
야생화 전문 전시관 방림원.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2114-68


유동룡미술관

포도호텔, 수·풍·석 뮤지엄, 방주교회… 제주 여행 필수 코스로 꼽히는 이 장소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건축가 유동룡의 작품이라는 것.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그는 본질을 중시하고 자연을 존중하고 지역의 전통과 역사에 뿌리를 둔 건축을 추구했다. 특히 그는 제주를 제2의 고향 삼아 제주도의 바람과 하늘, 대지와 바다로부터 영감을 받은 여러 건축물을 남겼다. 유동룡미술관은 그의 철학과 독자적인 건축 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미술관은 유동룡의 딸인 유이화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아버지의 건축 정신을 담아냈다.
제주에 있는 유동룡 건축물 모형.
제주에 있는 유동룡 건축물 모형.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906-10